“끈을 연결하는 것도 무스비, 사람을 연결하는 것도 무스비, 시간이 흐르는 것도 무스비”
영화 <너의 이름은>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무스비란 매듭이라는 뜻입니다. 영화에서는 수많은 실이 묶여 하나의 매듭이 되듯이 인연이 모여 끊이지 않는 실이 되는 것을 “무스비”라고 이야기합니다. 들으면서 평화캠프가 생각나지 않나요? 새삼 평화캠프와 함께하고 있는 “무스비”들이 생각납니다.
평화캠프 서울지부는 이번 겨울에도 끊이지 않는 인연을 이어나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촌 사무실에 옹기종기 모여서 새내기 자원활동가들과 목도리와 러그를 뜨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함께 뜬 목도리와 러그들을 장애차별철폐 연대 광화문 농성장에 전달하고 오기도 했습니다. 자원활동가들과의 인연, 농성장과의 인연이 모여서 이번 겨울을 따뜻하게 채워나갔습니다. .실과 실이 이어지고 인연과 인연이 예쁜 무늬를 만들어나갔던 이번 겨울, 그 따뜻한 시간을 엿보러 가실까요?
올 겨울엔 예측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매주 주말동안 광화문 광장을 찾았습니다. 전국에서 200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역대 집회참가자 수 중 최대 인원이었다고도 하지요. 그날 함께 있던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이렇게 모인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보며 느낀 것은 희망이 아닐까. 내가 혼자가 아니었구나 하는 희망 말이야.’
4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광화문에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철폐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외침이 4년을 넘어가게 될 줄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요. ‘나눔뜨개질’을 준비하면서 이 활동이 오랫동안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쳐온 사람들에게 ‘함께 하고 있다’는 메시지로 전달되길 바랐습니다. 추운 겨울을 버텨낼 힘에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겨울바람이 기승을 부리던 1월. 격주 화요일과 금요일이 되면 서울지부 사무실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들었습니다. 배워서 남 주는 뜨개질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눔뜨개질’은 내가 배운 것,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나누기 위한 마음들이 모여 이루어졌습니다. 뜨개질을 얼마나 잘 하고 못 하는 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하고, 익숙하지 않으면 함께 배워 가면 되니까요.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쁘띠 목도리를 뜨는 것이 쉬울 줄 알았습니다. 바늘코를 만들어 뜨개바늘을 걸고 거기에 실을 감아 왔다 갔다 하는 동작만 반복하면 목도리가 금세 완성될 줄 알았는데, 웬걸……. 15개로 시작한 바늘코가 뜨다보면 한 코씩 사라지거나 19개로 늘어나기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정신을 집중해서 떴는데 바늘코는 왜 자꾸 사라지거나 늘어나는 것일까요. 한 줄을 뜨고 코를 세고를 반복해도 기현상은 계속 나타났습니다. 한창 뜨개실과 씨름하다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니, 처음 뜨개질을 시작하시는 분들은 저처럼 자꾸 바늘코가 사라져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쁘띠 목도리는 변형고무뜨기라는 방법으로 떴는데, 숙련된 분들이야 곧잘 뜨셨지만 뜨개질이 처음인 분들에겐 쉽지 않은 방법이었습니다. 예쁜 무늬의 목도리를 뜨고 싶다는 욕심에 어려운 길을 갔던 것 같습니다. 다음번에도 목도리를 뜨게 된다면, 겉뜨기-안뜨기처럼 쉬운 방식도 선택해 뜰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목도리 뜨고 풀기를 하도 반복하다보니 다들 바늘코를 뜨는 것만큼은 그 누구보다 자신 있어 했습니다. 그래도 몇 번의 좌절이 지나가고 뜨개질이 익숙해져서는 많은 분들이 ‘목도리’를 뜨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뜨개질에 숙련된 분들 덕분이었습니다. 지은 쌤과 미성 쌤의 친절한 설명과 피드백 덕택에 참여자들이 뜨개방법을 익히고 목도리를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뜨다가 풀기만 반복하던 저도 쭈욱 뜰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반면 러그뜨기는 쁘띠 목도리를 뜨는 것보다 훨씬 간단했습니다. 입지 않는 티셔츠 4-5장과 훌라후프, 가위만 있으면 러그 하나를 뜰 수 있었습니다. 두 명이 한 조로, 훌라후프에 적당한 너비로 자른 티셔츠 천을 끼워 기준선을 만들고 천들을 묶고 엮었습니다. 다양한 무늬와 색상의 티셔츠들을 한데 엮으니 그럴싸한 러그들이 하나, 둘 완성됐습니다. 쁘띠 목도리가 목도리 뜨기에 좀 더 집중해야 했다면 러그는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며 함께 완성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나눔뜨개질 마지막 날에는 광화문을 찾아 그동안 만들었던 목도리와 러그를 전달할 겸, 농성장에 계신 활동가 한 분과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뜨개질 활동 전에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나누긴 했지만, 현장에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습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가 무엇이고, 이 잘못된 제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지를 들으며 인연맺기학교에서 만났던 어린이들이 생각났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가 계속 있다면 내가 만난 어린이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그리고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나눔뜨개질을 했던 시간들도 떠올랐습니다. 실과 실이 엮여 무늬를 만들고, 무늬가 점점 확장되어 하나의 목도리와 러그가 되던 느린 과정을요. 그 과정이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위한 연대를 고민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 전누리 서울지부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