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 여름 네팔 해외자원활동 참가자 송연희

어느덧 네팔에 다녀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네팔에서의 기억은 점점 옅어지고 있지만 먼지가 자욱한 거리, 사람이 있든 없든 아랑곳 하지 않고 쌩쌩 달리는 오토바이와 차들. 네팔의 첫인상은 진하게 남아있다.

들뜬 마음에 피곤한지도 모르고 2번의 경유 끝에 카트만두의 호텔에 도착하고 Nabin을 따라 카트만두 시내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한국과는 다른 풍경, 알록달록한 건물들에 잠시 한눈을 팔다 오토바이와 충돌할 뻔 했던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네팔에 도착한 첫날부터 낯선 것이 아닌 네팔의 익숙함을 배워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호텔조식으로 배를 든든히 하고 FFN소속 미국 친구들 2명과 함께 카트만두 캠프하우스로 향했다. 다른 나라의 또래 친구들과 함께 지낸 경험이 없어서 함께 잘 생활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평화캠프에서 준비해 온 프로그램(좀비게임), 옹기종기 모여 즐긴 저녁식사 그리고 nathenial의 서프라이즈 생일파티를 함께하며 어느 샌가 가까워 있음을 느꼈다. 학교에 가기 전날이었기 때문에 미리 계획했던 프로그램에 대해 선생님들과 모여 의논하고, 미리 만들어본 후 학생들에게 바로 가르쳐 줄 수 있도록 준비를 하며 카트만두 캠프하우스의 첫날밤을 보냈다.

카트만두 학교에서의 첫날, 전교생들이 운동장으로 모여 조회를 하고 우리 자원 활동가들의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교장선생님께서 환영의 의미로 이마에 티카를 찍고 천을 목에 둘러주셨다. 아이들은 모두 밝게 웃으며 우리를 반겼고 먼저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다. 자기네 반으로 오라며 손짓하는 아이들의 바람을 다 충족시켜 주지 못해 아쉬웠다. 그래도 몇 개 반에 들어가 준비해간 프로그램을 모두 잘 따라 와주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만들기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는 운동장으로 나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꼬리잡기 등 한국전통놀이를 알려주었다. 마치 초등학생 시절 때처럼 아무생각 없이 학생들과 온 힘을 다해 뛰어 놀았다. 꺼진 배를 다시 든든히 하고 학교 앞 녹슨 대문에 페인팅 작업을 했다. 페인트칠하기 전에 울퉁불퉁한 대문을 사포로 긁어내는 작업도 해야 했다.

페인트 작업을 하는 동안 철가루를 뒤집어쓰기도 하고 땡볕 밑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마지막 날 밝은 하늘색의 대문을 보았을 때, 3일 동안 우리들의 노고가 한 순간에 잊히는 순간이었다. 3일 동안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던 탓인지 일정을 끝내고 캠프하우스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바네파에서의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했다.

학교에 가는 마지막 날에는 감기와 배탈이 겹친 탓에 생각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짐이 되지 말아 야겠다는 생각에 무리 아닌 무리를 했던 것이 나에게 독이 되었던 것 같다. 그날 저녁 열이 더 올랐고, 지영 쌤과 순이 쌤께서 몇 시간동안 손에 찬물을 적시면서 마사지를 해주셨다. 이렇게 아파봤던 기억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따뜻한 간호를 받아 본 기억이 없어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간호학을 전공하면서 항상 꿈에 대한 확신이 없었는데 이때 느낀 감정들이 흔들리는 꿈에 확신을 불어넣어주었다.

다음날 카트만두에서 바네파로 이동하기 전 새벽에 도착한 일본인 친구 3명과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부채에 Mahesh와 Nabin에게 롤링페이퍼를 쓰고 벽에 붙여 우리들의 흔적을 작게 남기고 떠났다. 1시간 반 동안 차로 이동하여 바네파 캠프하우스에 도착했다. 카트만두 캠프하우스에 비해 환경이 좋진 않았지만, 밤이 되면 보이는 야경과 우리를 반기고 따르는 강아지는 그것들을 모두 잊게 해주었다.

바네파에서의 둘째 날, 경사진 산을 힘겹게 오르고 시네갈 마을회관에 들러 마을 이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수로작업을 위한 도구들을 챙겨 목적지로 향했다. 모두 젖 먹던 힘을 다해 땅을 파고 돌을 옮기는 작업을 했다. 큰 바위를 산산조각 내는 모습을 보는 재미, 노래를 틀어놓고 리듬에 몸을 맡기며 삽질하는 재미도 있었다. 도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모두 꿋꿋이 작업을 끝냈고 가벼운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비가 많이 내려 학교에 가기로 했던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간만의 여유를 즐기며 꿀 같은 시간을 보냈다. 이날 체력을 보충할 시간이 있었기에 바네파 학교까지 3시간이 넘는 산행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2시간 동안의 등산 끝에 학교를 도착했을 때 이미 체력은 바닥을 쳤지만 나의 허리만한 키의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에 빨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어 마음이 들떴다. 나이가 어려 소통이 어려웠지만 눈빛과 몸짓으로 프로그램을 잘 이어나갔다. 또 다시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해야 할 시간이 왔다. 항상 헤어질 때는 아쉽지만, 좋은 추억들을 만들고 가기에 웃는 얼굴로 “나마스떼”하며 인사할 수 있었다.

그날 밤은 캠프하우스 근처의 수리자나 집에서 홈스테이 했다. 네팔 전통 의상을 입어보고, 손으로 밥을 먹고, 함께 전통 춤을 추며 깔깔 웃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어느 샌가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려 일곱 시가 되기도 전에 눈이 떠졌고, 모두들 하루 동안 자기가 맡은 역할을 책임감 있게 수행하고 있었다. 영어로 말을 하는 것이 어색했던 내가 FFN 관계자 분과 마지막 회의를 할 때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현지인 마냥 이리저리 오토바이와 차들을 피해 다니고, 카트만두 시장에서 상인들과 가격을 깎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는 우리들의 모습도 발견했다.

내가 좋아하는 동물들과 순수한 미소를 가진 아이들이 가득한 네팔, 마지막 날까지도 나의 건강에 대해 걱정하며 괜찮나 묻는 많은 사람들, 함께 울고 웃던 시간들. 단연코 최고였다. 네팔에서의 순간순간이 너무 값지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어느 샌가 내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