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2020년 가을호 소식지에 실린 녹색연합 박수홍님의 글입니다
개인의 실천을 지속하는 것이 기후파국을 막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2015년 파리, 국제사회는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아주 의미 있는 약속을 합니다.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2도 훨씬 아래로 제한을 하고 1.5도까지 제한하는 노력을 하자’라는 아주 구체적인 공동의 목표를 설정합니다. 2018년 송도에서 열린 IPCC(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총회에서는 인류가 생존할 수 없을 정도에 기후파국을 맞지 않으려면 2도가 아니라 1.5도에 목표에 맞추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특별 보고서가 공개됩니다. 기후 과학적으로 1.5도가 아니면 인류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걸 과학자들이 경고한 겁니다. 파리협약에서 애매모호하게 ‘노력을 해보자’고 설정한 목표가 이제는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우리 생존의 목표가 된 겁니다.
IPCC는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1.5도로 제한하려면 전 세계가 201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45%를 줄이고, 2050년까지 201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가입니다. 인류는 IPCC가 제시한 것처럼 온실가스 배출량을 급진적으로 낮춰본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 이 말은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화석연료를 펑펑 쓰면서 생산하고 마음껏 소비하는 것이 당연한 현재의 사회·경제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다면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행동해야 하는 이유
그러나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고작 7년하고 몇 개월 남짓 남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로 제한하려면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양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전 세계가 해마다 42기가톤의 이산화탄소를 평균적으로 배출한다고 가정하면 현시점에서 약 7년 정도 후에 이 한계치에 도달하게 됩니다. 인류를 기후파국으로 지킬 수 있는 시간이 7년 남짓 남았다는 것인데, 개개인의 작은 실천만으로는 이러한 기후 위기의 속도를 늦출 수 없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나서서 과감하게 사회·경제 시스템의 체질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정부는 기후 위기 비상 선언, 온실가스 배출 제로를 선언하고, 그에 맞는 법을 만들고 정책을 강력하게 실행해 나가야 합니다. 기업도 생산과 유통과정에서 배출 제로를 전제로 한 사회 책임경영으로 기후 위기 대응의 적극적인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탈 탄소 사회로 갈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을 압박해나가야 합니다. 2020년은 파리협약에 따라 전 세계 각국이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2050년까지의 저탄소 사회 비전을 제출해야 하는 해입니다. 올해 각국이 어떤 계획을 제출하느냐에 따라 전 세계 기후 위기 해결의 명암이 갈리게 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적극적인 기후 행동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고 필요한 시기입니다.
기후 감수성
하지만 기후 행동에 있어서 우리가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개개인의 작은 실천만으로 기후 위기의 속도를 늦출 수 없다’라는 말의 의미는 개인의 실천이 아무 의미 없으니 모두가 시위나 집회에 참여하는 집단행동만을 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대부분을 정부와 기업이 배출하는 상황에서 개인의 실천으로 감축할 수 있는 온실가스의 양은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실질적으로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시민밖에 없다는 점을 우리가 주목해야 합니다. 시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건 당연히 정부와 기업들이 무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후 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개인적 실천을 생활화한 기후 감수성이 높은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이들이 집단을 넘어서 그 사회의 주류가 된다면 정부와 기업은 자연스럽게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와 기업을 바꿀 수 있는 사회적 힘은 개인의 실천과 감수성에서 비롯됩니다.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개인적 실천과 집단적인 행동이 모두 필요합니다. 둘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일상 속 담대한 전환
우리는 일상 속에서 기후 위기를 대응해 나가야만 합니다. 그래야 가속화되는 기후 위기의 속도를 실질적으로 늦출 수 있는 전 사회적인 집단행동들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후 행동을 전제로 한 개인의 실천, 그리고 생활 속에서 담대한 전환을 모색해야 합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전환은 비단 정부와 기업의 몫만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 어떠한 실천과 전환을 모색해야 할까요? 최근 많은 사람이 주목하고 있는 건 ‘탈 육식’과 ‘운송수단의 전환’입니다.
<기후 위기 대응의 히든카드_탈 육식>
요즘 많은 사람이 기후 위기를 늦추기 위한 가장 결정적인 실천으로 탈 육식을 꼽고 채식을 권하고 있습니다. 고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식단에서 동물성 식품을 모두 제외하면 온실가스의 22%가량을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2019 IPCC 전 세계 토지사용 및 농업에 관한 보고서). 전 세계 모든 운송수단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양보다 많은 양이라고 하는데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전기차를 꼽는다면 당연히 비건 식단도 함께 힘주어 말해야 합니다.
탈 육식은 온실가스 감축에 초점을 둔 전 세계 대부분의 기후정책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탈 육식이 기후 위기 대응의 히든카드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축산업은 사육과정에서 막대한 방목지와 사료를 재배하기 위한 경작지가 소모됩니다. 이 과정에서 온실가스의 상당 부분을 흡수하는 땅과 바다가 훼손됩니다. 육식을 지양하는 것만으로 기존의 흡수원을 온전하게 지켜나가는 것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에너지 전환만으로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데 역부족이라고 과학계와 환경 운동계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전환의 효과에 상응하는 기후 위기 대응책이 필요한데 탈 육식에 기반한 식문화의 전환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겁니다. 식단을 바꾸면 에너지 전환과 비교해서 더 빠르고 비용을 적게 들여 기후 위기에 대응을 할 수 있습니다.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고 재생에너지 시설을 신설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에 비하면 개인의 식습관 전환은 더 빠르게 쌉니다. 물론 다양한 측면이 고려되어야 하는 식습관과 식문화를 단순히 비용 편익 적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생태계 파괴, 동물 착취, 개인 건강 악화 등에 문제는 물론이고 인류 생존이 달린 일을 두고서 더 육식을 고집할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걸어야 도달할 수 있는 넷 제로(Net-Zero)운송 수단의 전환>
최근 발표된 기후 위기와 관련된 2가지 보고서는 개인의 실천 수단으로서 운송수단의 전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IEA(국제에너지기구)는 최근 발표한 ‘세계 에너지 전망 2020 보고서’에서 2050년 배출 제로(zero)를 위해서 개개인의 행동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분석했습니다. 3km 미만은 자동차 대신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비행시간이 1시간이 안 되는 거리는 항공기 대신 저탄소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도로 교통의 속도를 7km 늦추는 것 등을 지금 당장 실행하면 운송 부문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20% 이상 줄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최근 영국 리즈대학교 연구팀은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10가지 방법’보고서에서 개인이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는 것’을 뽑았습니다. 이 밖에 운송수단과 관련된 방법(전기자동차 운행하기, 장거리 비행기 안 타기, 대중교통 이용하기)이 5위 안에 3가지나 제시되었습니다. 4가지 방법을 모두 실천할 경우 한국인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2017년 기준)의 절반 정도를 줄일 수 있습니다.
물론 먼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하거나 자동차로 가야 할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갈 수는 없습니다.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지나친 자동차의 이용은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누려온 풍요 중의 하나입니다. 내연기관 자동차 사용은 화석연료 사용을 부추겨온 대표적인 원인 중의 하나입니다. 자동차 이용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경제 구조는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변화가 필요합니다. 최근 재선에 성공한 이달고 파리시장의 시정 운영 공약이 이러한 점에서 시선을 끌고 있습니다. 시내 전역 30km 자동차 속도제한, 노상주차장 3/4 폐쇄를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이는 자동차 중심이 아닌 사람을 위한 도시로 만들고 기후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겁니다. 이렇게 담대한 시도를 하는 파리시장과 같은 정치인이 우리에게 필요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혁명에 가까운 공약을 지지한 파리 시민들이 그 정치인을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시작은 개인의 작은 기후 실천이었겠지만 이것들이 모여 기후투표라는 집단적인 기후 행동의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파리시민이 가진 기후 감수성은 앞으로도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프랑스의 사회·경제 구조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겁니다.
개인의 실천을 지속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2020년 9월 24일 우리나라 국회도 ‘기후 위기 비상 선언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19대, 20대 국회에서 비슷한 결의안이 발의는 됐지만 본 회의의 문턱은 넘지 못했습니다. 확실히 예년보다 대한민국 국회 내 인식이 달라진 것은 확실합니다. 2019년부터 적극적으로 이어져 온 국내 기후 운동의 성과이기도 하고, 올해 상반기 지방 정부들의 비상 선언의 영향이 컸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회가 기후 위기 대응의 시급성에 절감하는 시민 한 명 한 명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여 결의안을 통과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볼 것들이 많습니다. 여전히 국회의 비상 선언 결의안은 현 기후 위기의 시급성을 비추어 봤을 때 내용상으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또한 결의안 자체가 강제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확실한 기후 위기 대응법으로 이어져야 할 과제도 남아있습니다. 국회가 아닌 행정부 차원의 기후 위기 비상 선언 선포와 강력한 기후정책도 이어져야 합니다. 이를 견인할 수 있는 건 기후 감수성을 가진 시민들의 힘뿐입니다. 이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루어야 합니다. 기후 감수성을 가진 시민이 주류가 될 수 있는 불씨는 이미 당겨졌습니다. 개개인이 작은 실천을 멈추지 않고 지속하는 것 만이 그 불씨를 꺼지지 않고 더욱 타오르게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또한 우리 앞에 닥친 기후파국을 막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 넷 제로(Net-Zero)-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의 순배출량이 0이라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