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어린이들은 훌쩍 자라 있었다. 얼굴은 분명 그대로인데 위아래로 늘인 것처럼 키만 자랐다. 아니, 그런 줄 알았는데 몇몇은 변성기가 왔다. 일주일이 다른 모습을 반년도 더 지나 한꺼번에 만나니 충격은 두 배… 어린이들의 시간은 내가 사는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흐른다는 걸 체감한다.
어린이들의 성장 속도처럼 이날 하루가 예상 바깥이었다. 구질구질하고 싸늘했던 주중과 다르게 하늘은 푸르고, 볕은 따스하고, 짝꿍이었던 어린이와 짝꿍이 된 어린이 모두 오지 않았다. 이로써 짝꿍인 어린이를 알아가고 짝꿍이었던 어린이에게 쿰척여 보려던 계획은 전부 날아갔다. 하지만 백지가 된 계획은 새로운 즐거움으로 채워 지기 마련! 마찬가지로 짝꿍 선생님이 오지 않은 서준이와 일일 짝꿍이 됐는데.
그랬는데… 나와 달리 서준이의 시작은 즐겁지 않았다. 오매불망 기다려온 새로운 짝꿍쌤과의 만남이 무산되어 그만 시무룩해진 것이다. 실의에 빠진 그는 한동안 내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사진찍기도 거부했다. 도토리의 포토제닉이 사진 촬영을 거부하다니…! 머릿속에 비상등이 켜졌지만 당황하지 않고 날씨 얘기를 꺼냈다. 오늘 하늘이 어쩜 구름 한 점 없네. 그렇네요. 정말 구름 하나 없어요. 그런데 여긴 왜 이렇게 버스가 많이 다녀요? 로 시작된 대화는 초록색 오픈카도 사고 선생님들 모두를 초대해 짜장면을 대접할 거라는 서준이의 인생계획으로 흘렀다.
서준이는 모든 선생님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 성북천으로 가는 길, 서준이가 지난겨울 짝꿍 선생님이었던 김채은 선생님이 보고 싶다고 얘기할 때였다. 그런데 서준이는 여기 있는 쌤들 이름을 알아? 서준이는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그럼요오~~라고 대답했지만 나와 혜지 쌤 이름을 말하지는 않았다. 왜 짝꿍 선생님 아닌 선생님들은 여자 선생님, 남자 선생님으로 부르는지 채근하자 서준이는 조심스럽게 자기는 짝꿍 선생님 이름만 외운다고 털어 놓았다. 이름을 부르는 건 중요해. 그래요? 대화는 곧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근데 저는 짝꿍 선생님 이름만 외워요.” 대화가 흘러도 그 말이 어쩐지 진하게 남아서 서준이가 내 이름을 부르지 않더라도 서준이 이름을 그만큼 자주 불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날의 프로그램은 모두 좋았다.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부는 성북천을 걷고, 샌드위치랑 에그푸딩을 만들어 먹고, 베리어프리 영화를 보는 일련의 시간이 ‘첫 활동’하면 떠오르는 복작복작하고 긴박한 느낌 없이 여유로웠다. (백조가 물밑으로 바쁘게 발길 짓 하듯 스태프 선생님들의 노고가 아니었다면 없었을 여유… 선생님 간 사합니다) 도토리 어린이들도 자랑키 만큼 기다릴 줄 아는 여유가 늘었다.
도토리자원활동가 전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