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따뜻한 날, 창덕궁으로 나들이를 갔다. 이번주 책임교사를 맡아서 전날에 미리 답사를 왔었는데도 불구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변수들이 많이 있었다. 미리 살펴본 베이스캠프는 햇살이 너무 따뜻하게 내리쬐고 있어서 그늘이 없었고, 활동을 하면 안된다는 제재를 받아 준비한 활동들을 거의 못 했다. 또 휠체어를 타고 들어오는 입구나 길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 날씨도 화창한 좋은 날에 즐거운 활동을 하면서 추억을 쌓고 싶었는데, 답사를 꼼꼼하게 하지 못한 탓에 망친 것 같아 너무 속상했다.
하지만 돗자리를 피고 앉아 아이들은 즐겁게 활동을 했고 쌤들이 햇빛을 등지고 서서 그늘을 만들어주셨다. 색색의 도화지에 고궁그림을 붙이고 알록달록한 색깔들로 고궁을 색칠했다. 그리고 준비한 활동은 다 하지 못했지만 아이들과 쌤들이 삼삼오오 모여 창덕궁 산책을 했다. 다 함께 천천히 거닐면서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가을을 만끽했다. 가을날씨가 너무 좋아서 밖에 나온 것만으로도 기분전환이 되는 느낌이었다.
책임교사로서 속상한 마음들이 쌓이고 있었는데, 산책을 하면서 그런 마음들이 눈 녹듯 사라졌던 것 같다. 특히 유민이와 산책을 할 때 유민이가 모래를 만지며 가을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위로를 받았다. 유민이가 모래를 만지고 싶다고 말해서 쌤들과 구석에 앉아 유민이가 모래를 만질 수 있도록 했는데, 그 모습이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됐던 것 같다. 나들이를 와서 아이들이 가을을 마음껏 느꼈다면 그걸로 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느긋한 산책을 즐기고 난 후 지율이와 승준이도 와서 다같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얼음 땡을 하며 신나게 뛰어놀자 어느 새 시간이 금새 지나가 있었다. 처음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 속상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었는데, 아이들과 쌤들 덕분에 치유받고 더 큰 감동을 받은 하루였다. 그늘을 만들어주던 쌤들의 모습, 산책을 하며 서로를 카메라에 담던 모습,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며 천진난만하게 웃던 아이들과 쌤들의 모습, 모래를 만지던 유민이의 모습들이 가을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이 날 것 같다.
도토리 인연맺기학교 장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