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_spring_0111091일만의 귀환,
하지만 『머나먼 세월호』

신지혜 / 평화캠프 고양지부 사무처장

차디찬 바다 속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세월호가 올라왔다. 1073일만이었다. 유가족이 되는 것이 소원이라던 미수습자 가족들은 세월호를 보며 울부짖었다. 그리고 1091일이 되었던 날, 세월호는 완전히 뭍으로 옮겨졌다. ‘박근혜 대통령을 내리고 세월호를 올려라’라는 국민의 목소리는 3년이 지나서야 현실이 되었다. 대한민국이 함께 침몰했던 세월호 참사 3주기,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에서 활동했던 권영빈 진상규명소위원장이 특조위의 활동의 기록을 세상에 내놓았다. 평화캠프 회원이기도 한 그의 2년이 넘는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는 책, 『머나먼 세월호-세월호 특조위와 함께한 시간』이다.

2014년 4월 16일, 온 국민이 다른 국민이 세월호와 함께 죽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날, 국가는 무엇이며, 국가는 누구의 곁에 있는가를 질문했다. 그 질문들은 도대체 왜 세월호가 침몰했는지, 그리고 왜 구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국민들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으로 요구했다. 350만 1,266명의 서명은 마침내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답을 기다렸다. 질문 자체가 잘 못 됐다고, 질문을 하는 사람들과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특조위를 ‘세금 도둑’으로 몰아가는 몰염치가 점점 세상을 뒤덮었다. 하지만 권영빈 변호사를 비롯한 특조위와 국민들은 답을 찾기 위한 최소한의 국가 기구로서 특조위를 지키려고 애썼다.

하지만 여전히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아니, 답을 찾지도 못했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조사할 수 있는 기간은 단 11개월뿐이었다. 특조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할 방해는 끝이 없었다. 그리고 그 방해는 우리가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만 하는 정부가 주도했다. 정부는 조사에 꼭 필요한 청문회의 장소도 제공하지 않았다. 국가의 잘못을 국가의 기구로 밝혀내기는 어려웠다. 특조위가 권한을 갖고 제대로 진상규명을 할 수 있도록 노숙농성도 하고 단식농성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특조위는 강제 해산 당했고, 특조위 홈페이지는 폐쇄되었으며 조사 결과를 담은 백서도 내지 못했다.

답을 찾기 위한 중요한 실마리가 될 세월호는 특조위가 강제로 해산되고 나서야 뭍으로 올라왔다. 정부가 세월호를 인양하겠다고 결정한지 2년이 되어서야 뭍으로 올라온 것이다. 진상규명을 위해 조사해야 할 229건의 과제 중 20여건의 과제에 대해서만 조사결과보고서를 작성하고 의결할 수 있었다. 권영빈 변호사는 하루 빨리 2기 특조위가 구성되어야 한다고 소리 높여 말한다. 그는 지난 4월 11일, 세월호 선체조사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유가족의 추천으로 3년 동안 바다 속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세월호의 진실을 또 다시 파헤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부디, 그의 노력으로 세월호는 왜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는지, 304명의 삶은 왜 멈춰야 했는지 답을 찾아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함께 답을 찾고자 하는 많은 회원들이 지난 1기 특조위의 기록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