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도 행정안전부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으로 시작한 네팔 여성자조모임 지원사업이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참여했던 자원활동가의 후기를 보내주셨습니다. 많은 관심과 지속적인 응원 부탁드립니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우연과 비정형성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이 정해진 대로 흘러가기보다는 약간씩 어긋나고, 예측하지 못한 사람과 공간과 시간을 만날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생의 아름다움을 마주하고, 살아있음을 몸소 깨닫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제게는 이번 네팔여성자조모임 활동이 그러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새로움과 도전의 연속이었고, 살면서 단 한 번도 예상하지 못한 존재들과 그 존재들로부터의 따뜻함을 만난 경험이었습니다.

네팔은 제게 생소한 나라였습니다. 제가 네팔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히말라야와 쿠마리 정도가 전부였지요. 전문 활동가이기는커녕, 활동 경력조차 없었던 제게 네팔여성자조모임은 꽤 운명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랫동안 봉사활동에 대한 열망이 있었지만, 용기가 없었습니다. 여러 봉사활동 사이트에 들어가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런 활동을 해봐야지’라고 생각만 하는 것이 소소한 취미였습니다. 그러던 중 연초에 네팔여성자조모임 활동지원공고를 보게 되었고, 지금도 그것이 어떤 용기였는지 쉬이 정의하기는 어려우나, 그 용기를 가지고 활동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네팔에 출국하기 전까지 한국에서의 활동은 매우 흥미롭고 즐거웠습니다. 당장이라도 네팔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곤 했지요. 네팔여성이 당면한 각종 성차별 이슈, 생리기간 여성을 격리하는 ‘차우파디’라든가, 여성아동의 인권을 짓밟는 ‘쿠마리’, 남성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직업여성의 비율 등은, 직접 네팔에 가기 전까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게 일종의 연구해야 할 학문적 콘텐츠였으며, 흥미로운 의제였습니다. 네팔여성자조에 대한 논의 또한 그러했습니다. 어쩌면 네팔여성자조모임 활동에 참여하는 본인을 위한 당위성을 마련코자 네팔여성의 지위와 차별적 대우를 수치화하여 이용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초보 활동가로서 제가 겪은 우월적 지위에 대한 무의식적 반응은, 어쩌면 많은 활동가가 함께 짊어진 과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에는 저조차도 알아채지 못했던 이러한 마음을 안고, 꽤 오랜 기간 고대한 네팔행이 진행되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무척이나 설렜고, 또 긴장되었습니다. 처음 그들을 만나러 가던 여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만나기 전부터 이미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유대감과 연대의식은 그들을 대면한 뒤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네팔여성자조모임에서는 인형 등의 프로덕트를 수작업으로 만들어내는 봉제교육이 중점적으로 이뤄졌습니다. 모임에 참여하는 네팔여성 모두가 기혼자였으며, 아이가 있는 여성도, 없는 여성도 있었고, 연령대 또한 무척이나 다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의 직업은 ‘가정주부’였습니다. 거의 모든 성인여성의 지위가 가정주부로 귀결된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음에도, 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인 이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외에 다른 이유로는 설명이 불가한 상황에서, 직업을 물을 수 없고, 물을 필요도 없다는 것이 제게는 매우 부조리하게 느껴졌습니다. 네팔에 직업여성의 비율이 낮다는 사실을 통계를 통해 아는 것과, 당장 옆에 앉아있는 이에게 아주 당연하게 직업을 물으려다, 그것이 실례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닫는 과정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경험이, 네팔여성자조모임을 통해 제가 겪은 가장 중요한 지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조모임에서 만난 여성들은 매우 용기 있고, 도전적이었으며, 본받을 만큼 직업교육에 집중했고, 또 긍정적이었습니다. 여성동료로서 그들은 제게 희망과 열정을 심어줬습니다. 더하여 그들은 매우 호의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로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우리를 대해줬습니다. 모임에 참여하는 여성 모두 모임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각자의 목표가 있었고, 추구하는 삶의 모양이 정확히 있었습니다. 각자의 생에 대한 확신과 신념은 같은 여성으로, 그리고 인간으로서 자조모임에 참여한 여성들을 사랑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지금도 네팔의 색이 선명히 떠오릅니다. 유난히 밝게 빛나던 빨간색과 노란색의 색감이 어느새 제 기억 속 한 부분을 차지해 영영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바느질, 가위질하던 자조모임 여성들의 빛나는 눈동자와 화려한 색감의 옷, 소품, 그들이 만들어낸 청명한 색의 인형, 네팔은 그렇게 제가 경험한 모든 곳 중에서 가장 밝은 색감과 용기를 가진 도시로 기억될 것입니다.

사실 지나치게 도시화된 사회에만 익숙했던 제게 네팔에서의 일주일은 마냥 쉬운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비포장도로를 걷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됐고, 오토바이와 자동차의 매연으로 뿌연 눈앞을 보았고, 또 향신료로 인해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는 경험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신호등 없는 도로를 걸어도 사고 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 자유롭게 걸을 수 있었고, 네팔인 대부분이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를 저도 타보고 싶어서 탈 기회가 있는지 기웃거리기도 했고, 향신료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우걱우걱 맛있게 음식을 잘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인간이 얼마나 적응에 민첩한 동물인지 깨달았지요.

‘여성’과 관련된 예술 작업을 하고 있으나, 늘 세상에 제 작업을 ‘여성’에 대한 작업이라고 말하는 것에 불편과 두려움을 느껴왔습니다. 용기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이고, 삶에 대한 열정은 무엇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저는 네팔여성을 교화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무의식적 우월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에 대한 확신과 당당함으로 무장한 그들을 통해 오히려 인간이었으나 여성이기에 당당하지 못했던 자신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네팔여성자조모임은 여성으로 완전한 인간으로 인정받기를 두려워했던 제게 용기와 유대를 선물했습니다. 나아가 제 작업을 통해 개인의 삶에서 지켜나감과 동시에 다른 누군가와 함께 공유해야겠다는 마음을 심어주었습니다. 네팔과 한국에서 함께 활동한 우리 모두에게 생을 아름답게 만들 희망과 용기가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박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