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가 끝이 났다. ‘사회적, 생태적 전환과 기본소득’이라는 주제로 7월 7일에서 9일 사이에 서울의 서강대에서 열린 이 대회는 아시아에서는 처음이었다. 23개 나라의 기본소득네트워크가 함께하고, 전 세계 기본소득 이론가들과 활동가들이 모였던 이 대회에서 나는 대회 운영의 한 부분을 맡게 되었고 처음으로 기본소득의 열기를 느껴보았다. 물론 대회 참가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저자 사인도 잊지 않았다.
대회 운영의 그 작은 한 부분은 혹시 있을지 모를 단 한 명의 참가자를 위한 공간을 책임지는 것이었다. 유아 및 어린이를 동반하는 참가자들을 위한 돌봄지원 및 장애인 참가자를 위한 활동보조지원이었다. 인권 및 장애 인지 교육, 성평등 교육을 기본으로 하는 평화캠프의 발런티어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자원활동가들이 스태프로 함께 했다. 조금은 이 공간이 북적이길 바랐던 마음과는 달리 흥행(?)에는 실패했다.
나
기본소득. 이 간명한 네 글자가 던져 중 새로운 가능성에 마음이 쏠리고 호기심이 피어나던 무렵, 첫째 아이를 출산했다. 2010년 1월,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가 지금과 같은 장소인 서강대에서 열렸다. 처음 기본소득이 싹을 틔웠다. 함께 기본소득에 관심을 가졌던 동료들이 그 대회를 멋지게 치러내는 모습을 기사와 사진으로 보며 모니터 앞에서 혼자 웃으며 응원했다. 첫째 아이가 7개월 무렵이었다. 혹시나 영유아 양육수당 지원대상자가 될 수 있나 하는 마음에 필요하다는 소득 및 재산에 관한 여러 증빙 서류를 제출해보기도 했다. 물론 탈락. 어디선가 양육수당 등을 이유로 전세계약 등은 부모의 이름으로 한다든지, 은행 대출을 많이 받아 집을 사서 부채 규모를 늘려둔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부모가 자식 이름으로 만들어 둔 통장들이 양육수당을 신청하면서 자식들이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들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그리고 기본소득은 다시 한 번 도약했다. 2014년 2월, 기본소득공동행동(준)을 만들며 더욱 다양한 영역의 개인과 단체들이 함께 기본소득을 노래했다. 더는 기본소득이 낯선 단어가 아니었다. 그 당시 둘째 아이가 8개월이 될 무렵이었다. 어느새 영유아 양육수당은 보육료 지원 및 유아학비 등과 더불어 소득과 관계없이 모두에게 확대 시행되었고 영유아의 나이에 따라 차등 지급되고 있었다. 당시 매월 들어온 양육수당은 둘째 아이의 첫 통장의 시작이 되었다. 물론 세상이 놀랄 만큼 기본소득에 대한 인식이 커져서 바뀐 것은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이 놀랄 만큼 심각했던 저출산 문제 때문이었다. 이제는 노인, 청년, 장애인, 여성, 생태, 일자리 등 사회 어느 곳 할 것 없이 위태롭다. 안타까운 것은 더는 그리 놀랍지 않은 사회가 이미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기본소득의 새로운 가능성에 마음을 뺐앗겼던 그 무렵에 여전히 멈춰 있었다.
카티야 키핑
제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의 한 귀퉁이를 책임지며 온전히 대회 세션에 집중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두 아이와 함께 컴퓨터 속 모니터를 통해서 아닌 대회 속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대회 마지막 날, ‘기본소득과 민주주의 정치’ 마지막 전체 세션으로 <기본소득: 민주주의의 일반화>를 발제하기 위해 독일에서 온 독일 좌파당 공동대표인 독일 연방의원 카티아 키핑이 단상에 올랐다. 키핑은 남편, 그리고 딸과 함께 이 대회에 참가했다. 딸은 나의 둘째 아이보다 한 살 많았고 그들은 따로 또 함께 그 작은 한 공간을 누비며 어울렸다.
키핑은 말했다. 10여 년 전 주의회 의원이었지만 처음 기본소득을 주장했을 때의 들었던 조롱들을 먼저 밝혔다. “저 어린 여자가 미쳤다” 기본소득을 처음 주장하기 시작했을 때의 기억을 말하는 지금의 모습은 참 여유로워 보였다. 시간이 흘러 언제 그랬냐 듯 자신과 인터뷰하기 위해 이제는 정중하게 바뀐 언론 기자들의 모습들을 들려주었고, 지금은 그 아이디어는 불가피하고 당연하다고 입을 모은다고 했다.
카티야 키핑의 발제문은 기본소득에 대한 급진민주주의적 접근들을 소개하고 사회경제적 전환을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이 기본소득임을 단호하게 밝히고 있었다. 사람들은 정치 공동체적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받는 것이지 국가에 의존하는 복지 수급 그룹의 일원으로서 기본소득을 받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평화캠프가 꼭 밝히는 내용 중 하나인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만드는 우리의 자원활동은 시혜적인 자원봉사가 아닌 이유와 같았다.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조각난 낙인들, 나누는 이가 따로 있고 받는 이가 따로 인 삶들을 종용하는 사회는 모두의 삶을 보장해 주지 못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키핑은 이후, 다른 자리에서 평화캠프 인연썸머 후원을 위한 카드지갑을 샀고 발달장애어린이들과 여름캠프를 떠나는 우리들의 활동을 인상 깊게 소개하기도 했다.
대회를 통해 알게 된 소소한 사실 하나에 순간 울컥할 때가 있었다. 옆에 함께 앉은 예전의 인연맺기학교 선생님께 슬쩍 귓속말했다. “키핑이 저랑 나이가 같아요…ㅜㅜ” 웃으시며 말해주셨다. “나보다는 한참 어리단다.^^”
대회 중은 아니었지만, 키핑은 한국에서 여러 곳을 다니며 인터뷰하고 기자회견을 하며 기본소득을 알렸다. 그리고 꼭 잊지 않고 기본소득의 4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기본 소득은 첫째 개인의 권리이기 때문에 가족 부양 같은 문제가 슬쩍 들어와선 안 된다. 둘째, 어떠한 자산 심사도 없어야 한다. 셋째, 어떤 대가도 없어야 한다. 넷째, 가장 중요한 건 최소한의 빈곤선 이상으로 빈곤을 없애는 효과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회정치적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그래서 평화캠프는 늘 말한다.
“Shall we do 기본소득?”
그리고 나는 키핑을 만난 후, 절망속에서도 춤을 출 에너지를 +10획득했다.
/ 엄선미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