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9

11월에 접어드니 해도 일찍 저물고, 포이동 재건마을 역시 창문으로 비치는 불빛들만이 조용히 우리들을 기다립니다. 또각또각거리며 골목에 퍼지는 발소리며 이내 달그락거리며 열리는 자물쇠 소리는 어느덧 포이동 인연공부방의 온기로 변합니다.

책장의 책을 고스란히 뒤엎으며, 피아노며 쇼파며 소소한 가구들의 배치를 바꾸며 대청소로 시작한 하반기 포이동 인연공부방도 신입자원교사들과 호흡을 맞춘 지, 한 달여 시간이 흘렀습니다. 포이동 인연공부방의 소소한 일상을 들려드립니다.

삐그덕거리며 위태롭던 피아노 의자는 못과 망치로 손을 쓸 수 없게 되어 새 피아노 의자를 주문했습니다. 허리가 휘어져라 어깨에 이고 공부방으로 박스를 옮기는 모습이 누구일까요… 자원교사들의 크고 작은 일을 나서서 도와주는 공부방 겸이입니다. 초등학생 때에 비하면 제법 의젓해져 학생 대표라고 여겨질 정도입니다. 새로 산 피아노의자를 함께 조립하며 옥씬각씬 내가 하네 네가 하네…결국 겸이가 드라이버를 손에 쥡니다. 드라이버를 돌리는 손놀림이 믿음직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피아노 의자를 옮기던 이 날, 강남구청 도시선진화담당관들은 저녁에 슬쩍 마을을 들러 주차장에 주차된 차들마다 변상금 부과 통지서를 덕지덕지 붙이고 갔습니다. 주차된 차가 주차한 그만큼의 땅을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으니 변상금을 내라고 말입니다. 꽤나 자주 주차장을 왔다갔다 한 날인데 언제 스리슬쩍 왔다갔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이틀 후에는 새벽에 또 슬쩍 마을을 들러 죄다 변상금 통지서를 다닥다닥 붙이고 갔다고 합니다. 그 날은 포이동 재건마을 주민들이 이 문제에 대해 강남구청으로 항의하러 다녀오셨습니다. 물론 항의 방문 후, 강남구청은 ‘추후에 그럴 일이 없을테니 주차장을 이용하셔도 됩니다’ 라는 답변을 듣고 오셨다고 합니다.  수 십년째 같은 일상속에서 주먹구구식 같은 답변을 들으며 마을 주민들의 일상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입니다.

이렇게 새로 조립한 피아노 의자는 이제 누나의 피아노 수행평가 준비를 위해 세상 열 일을 모두 하고 있습니다. 월요일은 피아노 수행평가로 ‘엘리제를 위하여’ 가 공부방 가득 울립니다. 도입부만 벌써 몇 번 반복 재생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같은 곡을 준비 한 다른 친구들도 많고 그마저도 모두가 좋은 결과를 받았나봅니다. 결국 비교가 되어 포기라는 단어가 목젓까지 올라왔나봅니다. 포기보다는 좀 더 쉬운 곡으로 비담쌤이 안내합니다. 이제는 미뉴에트 도입부가 무한 반복 재생됩니다. 실력이 눈에 띄게 늘지 않아 곧잘 지치기도 합니다. 그럼 다른 과목의 책들이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홉스에, 칸트에, 로크에 철학자 이름들이 줄줄이 이어져 나옵니다. 어느새 오른 성적 덕분인지 윤리과목에 관심이 커졌습니다.

기존 자원교사들이 깜짝 놀란 일들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누나가 고등학생이 된 후, 공부방에서 책을 보는 시간들로 채워서일까요. 아니면 중학생이 된 후, 생각이 깊어진 것일까요. 이제는 교재도 풀고, 단어도 곧잘 외우며 연필을 듭니다. 큰폭으로 시험결과가 올랐다는 학생으로 뿌듯함은 덩달아 번져갑니다. 비록 지구력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머리를 맞대고 엉덩이를 붙이고 자리에 앉기까지 자원교사들과의 실갱이도 잊지 않습니다.

수요일은 그야말로 유치부들의 아기자기함이 한껏 묻어납니다. 집에서는 한 장을 넘기기 어려웠던 학습지도 짝꿍쌤들과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약속한 것은 마무리하는 습관으로 다져갑니다. 이후 대형터널로 요리조리 놀이 방식을 바꿔 놀기도 하고, 좋아하는 그림그리기도 지난 번엔 스케치북에 이번에는 색종이에 그리고 나무마저 캔버스 삼아 이어갑니다. 다른 한 쪽에서는 미산가 실팔찌 만들기가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평소에 차고 있던 이 팔찌가 끊어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데 우리는 어떤 소원을 담아 한 올 한 올 이어가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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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동 인연공부방은 코팅된 작은 종이 안내 현판이 전부였습니다. ‘포이동 주거복구 1호집 평화캠프 포이동 인연공부방’ 그래서 이번에 현판을 만들어보았습니다. 문에 딱 붙였으나, 이내 전체 교사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동안 덜커덩 거리며 땅으로 떨어져버렸습니다.  아무래도 다시 손을 봐야할 것 같습니다. 공부방 입구 신발장에 고정을 할까봅니다.

하반기 첫 전체 교사 회의에서는 주로 지금까지의 자원활동에 대한 평가와 그 동안의 관계맺기를 통해 가졌던 고민들, 그리고 소회들을 펼쳐졌습니다. 함께 하반기를 시작한 자원활동가 한 분이 두 번의 만남으로 아쉽게 그만두셔서 복잡한 심경들이 서로 교차했습니다. 아마도 이 약속된 자원활동기간이 끝난 후에도 우리는 같거나 비슷한 고민들을 안고 살아갈 것 같습니다. 낯가림이 심한 친구들이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까지 기약없이 기다린다는 것은 참 힘든 과정이니 말입니다. 때론 예기치 못한 일들로 서로를 더 힘들게도 했다가 오히려 더 힘을 얻기도 했다가 그렇게 들쑥날쑥한 일상들이 한 올 한 올 우리가 엮어가는 공부방으로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상상보다 믿기 힘든 현실이 고스란히 펼쳐지는 매일입니다. 상상보다 믿기 힘든 역사를 안고 현재를 살아가는 포이동 재건마을로 모두를 초대하고자 합니다.  12월 23일 금요일, ‘포이동 인연공부방 2016 후원의 밤’을 열어갈 예정입니다. 촛불을 들고 광장을 향하는 시민들의 마음처럼 포이동 재건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모든 분들과 그동안 포이동 인연공부방에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서 12월 23일엔 푸근한 마음을 안고 들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엄선미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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