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과 차별을 없애는 첫 걸음, 부양의무제 폐지
김인 / 평화캠프 해외사업팀장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겨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외침은 하나인 듯하다. 민주주의의 회복. 자신들이 생각하는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민주주의가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추운 겨울 쉬지 않고 거리로 나가고 있다.
이 겨울 거리의 촛불, 광장의 함성과는 조금은 거리가 떨어진 곳에 사람들이 있다. 광화문 지하철 역 안에는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를 말하면서 5년째 농성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부양의무제 폐지 과연 어떤 내용을 말하는 것인가.
우리나라에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라는게 존재한다. 이 법 제1조에는 “이 법은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급여를 실시하여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되어 있다. 급여에는 몇 가지가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생계급여다. 법조항에는 “수급자에게 의복, 음식물 및 연료비와 그밖에 일상생활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금품을 지급하여 그 생계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빈곤층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매우 필요한 제도이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 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개인의 소득을 산정하여 법이 정하고 있는 일정수준의 조건을 넘지 않아야만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소득을 산정할 때 단지 대상자 본인뿐 아니라, 1촌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소득을 포함하여 산정하고 있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급여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1촌의 직계혈족과 배우자가 있으면 해당 내용을 증명해야 하는(평균 소득이 일정수준에 미치지 못 한다는)상황이다.
얼핏 타당한 조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가족이라면 당연히 힘들게 사는 내 부모자식을 돌봐야 하는 마땅한 의무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자녀와 따로 살며 아무 도움을 못 받지만 단지 자녀가 있고 소득산정에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이유로 인해 해당 급여를 받지 못하는 노인들이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심사에서 탈락한 뒤에, 한 달에 20만원 받는 기초연금 외엔 그 어떤 금전적 혜택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장남은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지만, 다른 자녀들에게 부양비를 받는 걸로 정부는 간주하고 있다. 자녀에게 실제로 지원을 받지 못하는데도 자녀의 소득이 걸림돌이 되는 노인이 생기는 것. 부양의무관계를 포기하려면 서로의 동의를 얻은 각서가 필요하다.
1인 최저생계비 보다 개인 소득이 적으면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데, 자녀나 부모의 소득이 심사에 반영되면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자녀의 소득으로 인하여 실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노인빈곤층이 양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노인빈곤층 가운데 독거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10년 동안 두 배가 증가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기초생활수급자가 급여를 받기 위한 합리적인 조건처럼 보이는 부양의무에 관한 제도는 사실 가족관계를 나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난한 경우 가족에게 강제로 부양 의무가 주어짐으로써 가족 간 관계가 끊기고 해체되는 경우가 많다.
현대 사회에서 과연 가난과 빈곤의 문제를 가족에게만 지우는 것이 타당한지를 살펴봐야 할 때가 되었다. 돌봄과 부양의 문제를 개인에게만 돌릴 경우 이를 극복하지 못한 개별 가족의 해체가 가속화 될 뿐만 아니라, 가족 간에 끔찍한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마주하게 된다. 가족이 없어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어중간하게 책임지느니 가족이 없는 편이 나을 거라는 판단, 부양의무라는 형태가 가족을 버려야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모순된 현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회의 노년층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노년의 빈곤층 또한 증가하고 있다. 사회 여기저기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빈곤층에 대해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돕기”위해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것은 ‘부양의무’라는 굴레를 시급히 던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광장을 지키는 ★’들은 여전히 모두를 비추며, 따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