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ll we do ‘기본소득’ ?]
2017년, 전 세계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시작되다
-핀란드, 네덜란드, 캐나다 온타리오, 우간다
박선미 /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사무국장
2016년은 세계 기본소득운동의
큰 획이 그어진 해임은 분명한 듯하다.
기본소득은 한 해 동안 전 세계 정치계의 핫이슈가 되었다. 이른바 선진국의 여러 정당들과 의회에서 기본소득 논의와 지지가 크게 늘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 의회 기본소득 찬반토론이 이어졌고, 영국노동당 제러미 코빈은 대표선거에 나서며 기본소득을 정책으로 내세워 당선됐다. 영국과 캐나다의 자유당, 프랑스 사회당 등도 새롭게 기본소득 지지 정당들로 부각됐고, 그리스 재무장관을 지낸 바로파키스와 미국 클링턴 정부 노동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스 등도 열정적인 기본소득 주창자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과 지지 급증에는 6월에 있었던 스위스 기본소득 국민투표의 효과가 매우 컸다. 비록 발의 안건은 23% 지지로 부결되었지만, ‘삶을 위협하는 불안정 노동/소득’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전 지구적 상황에서 기본소득은 대안적 의제로서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7년에는 더 큰 일이 벌어질 듯하다. 핀란드, 네덜란드, 캐나다 온타리오 주, 우간다 등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1세계 나라들인 핀란드, 네덜란드, 캐나다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실시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어떤’ 기본소득이냐가 중요해진 지금, 이 실험들은 대단히 낙관하기도 대단히 비관하기도 어렵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왜일까? 한번 들여다보자.
‘노동시장 참여’에 주목하는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2017년 1월 1일부터 2년간 실시될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은 2015년 4월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 중앙당(중도우파)과 우파 정당들의 연립정부가 실시하는 실험이다. 이 총선에서 중앙당은 기본소득 실시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이번 실험은 공약을 실현하는 것이다.
실험 설계는 대략 이렇다. 우선 이 실험은 2016년 11월에 ‘노동시장 보조금’을 받거나 실업수당을 받은 25~58세 주민들 가운데 2천 명을 대상으로 한다. 2천 명은 실행주체인 Kela(핀란드 사회보장보험공단)에서 무작위로 뽑고, 뽑힌 사람들은 실험 참여 거부권이 없다. 기본소득 금액은 매달 530유로(핀란드 실업수당 최고액은 약 702유로이다)이고, 실험 도중에 일자리를 구해서 봉급을 받아도 기본소득은 계속 지급된다. 주택수당이나 보육료 지원 관련 복지 혜택은 그대로 유지되는데, 다만 가구 총소득을 계산할 때 기본소득도 소득으로 잡혀서 ‘복지 혜택수준을 결정하는 소득구간’에 영향을 준다.
노동시장 “참여와 고용을 더 잘 독려하기 위해서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핀란드 정부의 이번 기본소득 실험은 오래도록 기본소득 연구와 캠페인을 진행해온 기본소득핀란드네트워크과 핀란드의 녹색당, 좌파연합, 해적당 등의 우려를 낳고 있다. 비판은 주로 대상과 조세제도에 대한 것이었다. “저임금으로 일하는 사람들, 학생들, 자영업자들 등등의 여러 잠재적 수령인 집단들을 배제”하고, 현행 조세제도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실험은 ‘왜곡’이 발생하고 “인권, 자유, 평등”과 같은 사회정의 측면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엄격한 제재가 있는
네덜란드 기본소득 실험
2015년부터 위트레흐트, 흐로닝언, 틸부르흐, 바헤닝언 등 30개 지자체가 기본소득 실험에 관심을 보이자, 지난 2016년 9월 네덜란드 중앙정부가 실험을 허용했다. 그래서 현재 네덜란드에서는 최대 24개 지자체가 2017년부터 2년간 기본소득 실험을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중앙정부에는 허용 조건이 있었다. “제한된 규모로 엄격한 조건하에서” 실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사회복지 수급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실험은 현재 실시되는 사회복지와 5가지의 대안적 사회복지를 비교하는 실험이고, 실험 참가자는 자원자들로 구성되고 도중에 실험을 그만둘 수 없다. 또한 구체적으로 받게 되는 사회복지 조건은 무작위로 배정되어서 참가자의 선택권은 없다.
또한 이 실험에서는 어쨌든 ‘구직활동’을 제재조건으로 두고 있어서 파트타임 노동, 창업활동, 돌봄활동 등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제외되었다. 그래서 “억압이 아닌 신뢰에 기초”하고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선택, 더 많은 구매력”을 주는 실험을 기대한 원래 설계 관계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기본소득과 한참 동떨어진 실험이 ‘기본소득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셈이다.
‘음의 소득세 모델’을 실험하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
지난 2016년 2월에 기본소득 실험의 예산 배정을 약속한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도 2017년 3월경이면 3년간의 실험이 시작될 예정이다. 오랜 기본소득 지지자인 전 상원의원 휴 시걸(Hugh Segal)이 지난 11월에 실험의 설계와 운영에 관한 종합보고서를 냈는데, 휴 시걸의 안으로 2017년 1월에 주민의견수렴을 거치고 나면 실험은 본격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휴 시걸의 안은 ‘음의 소득세 모델’이다. 즉 실험 참가자들에게 매달 최소 1,320달러(=온타리오 주의 저소득 기준의 75%) 소득을 보장하는데, 참가자의 기존 소득이 1,320달러에 못 미칠 경우에 그 부족분을 ‘보충’해주는 식이다(장애가 있는 참가자들에게는 500달러가 추가 지급된다). 이는 참가자 개개인의 소득을 조사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기준 미달인 사람들에게만 지급한다는 점에서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노동 요구나 자산 심사 등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라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의 기본소득 정의와 다른 것이고, 그래서 ‘음의 소득세’가 기본소득인지는 논란이 있다.
온타리오 주 실험의 상대적 장점은, 고용 효과에 주목하는 핀란드나 네덜란드와 달리, 광범하고 다양한 효과를 확인하는 실험이라는 점이다. 정부 행정비용에서부터 건강생활 효과, 진로와 가족형태 등의 ‘삶의 선택들’, 노동행위와 노동시간 및 구직활동, 여타 복지프로그램과의 상호작용 등등 다각도에서 기본소득의 역할과 효과를 분석하는 실험인 것이다.
여러 우려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각각의 실험들은 기본소득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기본소득이 무엇인지, ‘어떤’ 기본소득이어야 하는지, 하이재킹하는 자는 누구인지에 대한 더 풍성한 토론을 이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