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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광주역사기행 <청년, 광주를 가다>]

기억하라 0518 기억하라 0416

문미정 / 평화캠프 사무총장

5월의 뜨거운 햇살 아래 사람들,
지금으로부터 37년 전 그날의 광주.

오늘의 오월보다는 조금은 부드러웠을지 모를 그 햇살 아래 사람들은 찬거리를 사러 장에 나왔고, 친구를 만나러 영화관에 갔다, 어쩌면 문제집을 사겠다며 시내에 나와 친구들과 몰려다니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집을 나선 그들은 다시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가족을 찾으러 간 그들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4월 16일,
지금으로부터 3년 전 그날의 바다.

처음으로 가는 제주도에 들뜬 학생들, 학생들 수학여행까지 따라가야 하는 계약직 교사, 여행하는 사람들 사이로 온종일 매점을 지켜야 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까지.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침몰하는 뱃속에서 마지막 메시지들을 남길 수밖에 없었던 그들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광주는 폐쇄되었다. 전화는 끊기고, 터미널에는 떠나는 사람도, 돌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시장엔 사람들이 있었다. 시장의 사람들은 주먹밥을 만들어 다른 이들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날랐다. 오로지 시민들의 힘으로 지켜지는 광주는 단 한 건의 약탈도 없었다. 빨갱이들의 소행이라 떠들어 대는 MBC방송국에 불을 지른 것이 단 한 건의 사건이었다.

팽목항은 노란 리본으로 가득 찼다. 돌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팽목항에는 가족들만 있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그곳에 앉아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기다린 건 아마도 진실이었던 것 같다.

도청을 지키고 있던 마지막 사람들은 결국 그 밤을 지나지 못하고 우리나라 군인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폐쇄된 광주의 이야기는 아무도 몰랐다. 광주의 진실을 알리다가 누군가는 건물 옥상에서 떠밀려 떨어졌고, 광주의 영상을 본 사람들은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20여 년의 시간이 흘러 진실은 밝혀졌다. 전두환은 감옥에 가게 되었고, 많은 사람의 억울한 진상이 법정에서 밝혀지기 시작했다.

세월호 가족들이 지키던 광화문 광장에선 3년 내내 진실을 원하는 이들의 끈질긴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세월호 사고가 있던 그때 어떤 명령들이 내려졌는지, 왜 사고에 대한 적절한 대처가 되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세월호가 가라앉는 걸 지켜만 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세월호는 떠올랐지만, 진실을 아직 떠오르지 못했다.

사람들의 저항을 총으로 짓이겨온 이들은 37년이 지난 오늘 자신을 스스로 ‘희생자’라고 이야기하며 이미 법적으로도 유죄를 선고받은 일들을 부정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얼마 있지 않아 감옥에서 풀려나고, 법적인 재산이 없다며 환수조치조차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아직 이 역사는 제대로 기록되지 못하고 있다. 아직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잊고 지내는 그 순간 우리가 찾은 진실은 부정 당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광주 시내에서 주먹밥을 나누며 희망을 나누던 눈물들을,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란 리본을 달며 간절히 빌었던 소원들을, 그 평범한 목숨을 걸고 지켜내려 했던 전남도청의 마지막 밤을 기억해야 한다.

역사가 다시 더럽혀지지 않도록 진실의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새로운 진실을 찾아내는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진실의 역사를 쓰는 펜에 힘을 더하게 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