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캠프는 꾸준하게 ‘사회적 약자와 기본소득’을 주제로 세미나 진행 및 기본소득 초청 강연회, 토크 콘서트 등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번 소식지에는 지난 자원활동가대회 ‘기본소득과 나눔'(금민)의 강의안과 전주지부 이장원 코디네이터의 ‘기본소득개헌’에 관한 글을 수록합니다.
기본소득 (basic income) 개념, 장점과 효과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1. 개념
1)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의 기본소득 정의와 권고안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정의에 따르면, 국가 등 정치공동체로부터 개별적인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노동 여부와 무관하게 일체의 자산 심사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현금소득이다. 즉 기본소득이란 국가로부터 개별 시민으로의 무조건(Unconditional), 보편적(Universal) 개별적(Individual), 정기적인(Periodic) 현금 이전(Cash Payment)이다.1 이러한 정의에는 지급수준에 대한 규정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지급수준은 “2016년 7월 9일 서울에서 열린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총회”가 채택한 권고안에서 다뤄지고 있다. 즉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는 “금액과 빈도가 안정적”이며, “다른 사회서비스들과 결합하여 물질적 빈곤을 제거”하고 “모든 개인의 사회적 문화적 참여가 가능하도록 하는 정책 전략이 될 만큼 충분히 높은”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지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2 이처럼 생계와 사회문화적 참여에 충분한 지급액수라는 기준을 충족시키는 기본소득을 “충분한 기본소득”(full Basic Income)이라고 부른다.
이와 함께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는 2016년 7월 9일 서울 총회에서 각종 조건부 사회수당과 기본소득의 통합에 대한 기준을 마련했다. 즉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취약하거나 소득이 낮은 사람들의 상황을 악화시킨다면, 사회서비스들과 수급권을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만약 현행 복지제도를 기본소득 제도로 전환할 때 기본소득 지급액수가 현행제도의 조건부 수당보다 낮다면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는 이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또한 지급수준이 낮은 기본소득을 도입할 경우, 모든 종류의 조건부 수당들을 기본소득 제도에 통합하는 것보다 기본소득보다 지급수준이 높은 조건부 사회수당 및 연금제도는 별도로 존속시키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2) 약한 기본소득 모델과 연동정책의 중요성
지급수준의 관점에서 기본소득 유형을 나눈다면, 기본소득만으로도 인간다운 삶과 사회적 문화적 참여가 가능한 ‘강한 기본소득 모델’(strong models of basic income)과 그렇지 않은 ‘약한 기본소득 모델’로 구분할 수 있다. 약한 기본소득 모델은 부분적 기본소득(patial basic income)이라고 불린다. 2016년 7월 9일 서울총회에서 채택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권고안에 따르면, 도입모델로서 지급수준이 낮은 기본소득을 검토할 경우에도 재정은 기존 복지의 축소를 통해 조달되지 않아야 하며 기본소득 지급액수보다 높은 금액의 조건부 수당은 존속해야 하며 충분한 기본소득을 장기적 목표로 해야 한다.
지급액수가 낮을 경우 기본소득만으로는 최소 생계가 불가능하다. ‘약한 기본소득 모델’을 도입할 경우에는 연동정책을 적극 배치하여 결과적으로 사회구성원 모두가 예외 없이 충분한 총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즉 기본소득뿐만 아니라 노동시간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시장정책과 생계비를 절감해 주는 공공서비스 확충 등 복지정책을 정교하게 설계하여야 한다. 또한 노동능력이 없는 장애인이나 노령층의 경우에는 기본소득뿐만 아니라 선별적 수당을 병행하여 지급할 필요가 있다. 즉 장애수당이나 장애연금 같은 특별수당이나 국민연금 수령자가 아닌 노령인구에 대한 특별수당 등의 형태로 기본소득 이외의 선별적 사회수당을 제공하여 그들의 총소득이 인간다운 생활에 충분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3 충분한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경우에도 장애수당이나 주거수당 등 ‘필요의 원리’에 기초한 현금이전은 존속해야 한다. 하지만 지급액수가 낮은 기본소득의 경우 이와 같은 선별적 사회수당의 존속은 더욱 필수적이 된다. 기본소득을 노동시장정책과 복지정책과 연동하는 이와 같은 정책믹스(Policy Mix)가 성공적일 경우, 비록 기본소득만으로는 인간다운 삶에 부족하더라도 노동을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가 공급되고 모든 사람이 임금, 기본소득, 선별적 사회수당 등을 합친 복합소득(Income mix)에 의하여 충분히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다.
3) 여러 종류의 현금이전 제도들과 기본소득의 비교
– 기본소득의 정의를 기준으로
i) 자격심사가 없다는 ‘무조건성’의 관점에서 기본소득은 수급조건이 정해져 있는 여타의 복지제도와 구분된다. 즉 사회부조(한국의 경우 기초생활보장법 상의 수급권)나 실업수당과 구별된다. 무기여형 현금이전이라는 점에서 기본소득은 기여형인 연금과 구분된다. 하지만 무기여형인 기초연금은 기본소득의 일종이다.4
ii) 자산 심사에 기초한 기존 복지제도는 가구별 심사와 가구별 지급 원칙에 근거한다. 직계 존비속의 소득이 자산 심사에 고려되는가 아닌가에서 차이는 있지만 부부소득 합산 원칙은 전 세계 어디에나 존재한다. 기본소득의 ‘개별성’ 원칙은 이와 정확하게 대립된다. 밀튼 프리드먼(M. Friedman)이 제안한 역소득세(Negative Income Tax) 제도는 회계연도 끝에 소득기준선 이하의 소득을 얻은 사람들에게 조세를 걷는 대신에 소득부족분을 메워주는 제도인데,5 비록 원리상으로는 개별화될 수 있지만 부부소득을 합산하는 조세제도 때문에 가구 수준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작동하며 다양한 종류의 역소득세 제안들도 가구 단위의 정책으로 제안된 것이다.6 가구단위 현금이전은 가구 내 분배가 언제나 불평등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지만 개별성 원리를 분명히 하는 기본소득에는 이러한 문제점이 없다.
iii) ‘정기성’의 관점에서 기본소득은 일회적인 ‘사회적 지분급여’(stakeholder grants)와 구분된다. 액커만(Bruce Ackerman)과 알스톳(Anne Alstott) 등이 주장했던 사회적 지분급여는 성인이 될 때 한 번의 종잣돈을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무조건 지급하는 것이지만,7 기본소득은 정기적으로 지급된다. 사회적 지분급여와 기본소득은 무조건성, 개별성, 보편성에서 같은 원리에 입각하며 단지 정기성에서만 차이가 있다. 두 가지 제도의 기원도 모두 18세기말 토마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페인은 『농지정의론』(Agrarian Justice, 1795)에서 사유재산권 제도 아래에서 성년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지분급여와 노인에 대한 기본소득을 토지에 대한 모든 인류의 공유에 기초하는 보상적 정의로서 제안한다.8
iv) 무조건성과 개별성은 ‘보편성’으로 이어진다. 개별적으로 심사 없이 무조건 지급하는 소득은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지급될 수밖에 없다. 기초연금이나 보편적 아동수당, 또는 청년배당 등 특정 연령대에만 지급하는 제한적 기본소득은 사회 전체의 수준에서는 보편성 원칙에 어긋난다. 하지만 해당 연령대 안에서는 어떠한 심사도 없이 누구에게나 지급대상이 된다는 점에서는 보편성 원칙이 제한된 연령 범위 안에서는 관철된다. 이러한 이유로 보편적 아동수당이나 노인기본소득 등은 제한적 기본소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초연금을 65세 이상의 모두에게 지급하는 경우는 기본소득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지만, 자격심사를 거쳐 빈곤노인에게만 지급하는 경우는 기본소득이라고 볼 수 없다.
4) 기본소득과 참여소득(participation income)
기본소득과 가장 유사한 제도는 참여소득이다. 참여소득은 기본소득과 마찬가지로 자산 심사가 없지만 일정한 활동에 참여할 것을 전제로 하여 지급한다.9 기본소득과 비교할 때 참여소득은 요건이 되는 일정한 활동에 대한 참여를 증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무조건성을 결여하고 있지만 근로연계복지(Workfare)와 달리 자산 심사가 없다. 이 점에서 참여소득은 자산심사를 하는 근로연계복지와 기본소득의 중간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10 서울시의 청년수당은 참여소득과 비슷해 보이지만, “가구소득, 미취업기간, 부양가족 수” 등을 심사하기 때문에 참여소득이라고 볼 수 없고 매우 관대한 요건을 가진 수당, 즉 매우 관대한 선별복지제도의 일종으로 보아야 한다.11 참여소득에서 심사가 필요한 유일한 기준은 자산이 아니라 특정 활동에 대한 참여일 뿐이다. 예를 들어 농업참여소득을 설계하려면 1년 중 일정 기간을 농촌에 거주하면서 농사에 참여하는 사람과 같은 기준이 필요하다. 반면에 농지 크기를 기준으로 지급되는 직불제는 기본소득도 아니지만 참여소득도 아니다. 참여소득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이 글의 뒷부분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2. 기본소득의 장점과 효과
1) 탈빈곤 효과
노동소득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지급되는 조건부 사회수당의 경우 최저임금이 사회수당보다 월등히 높지 않다면 복지제도 안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즉 수급권자는 수급권의 유지냐 그보다 약간 많은 임금을 주는 일자리인가의 선택에 직면한다. 이른바 복지함정이다. 복지함정은 ‘실업의 덫’에 걸린 상황이다. 즉 임금이 지불되는 일자리(paid employment)로의 이동이 총소득에 있어서 어떠한 유의미한 증가도 낳지 않을 때 실업의 덫에 빠졌다고 말한다. 높은 대체율(high replacement ratio)로 수급권의 혜택(benefits)과 노동소득(earnings) 사이의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한다.
그렇다고 복지제도 안에서 탈빈곤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사회부조나 실업수당에는 열등처우의 원칙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즉 지급액수가 최저임금보다 높을 수는 없다. 많은 국가들의 사회부조제도는 수급권자가 불안정한 일자리를 가질 경우 수급액을 삭감한다. 이처럼 수급권자의 노동소득(earnings)의 약간의 증가가 총소득의 어떠한 유의미한 증가도 낳지 않는 상황, 수급권자의 노동소득에 대한 잠재적 한계세율이 거의 100%에 접근하는 상황을 ‘빈곤의 덫’이라고 부른다.12 이러한 상황은 기본소득과 유사한 제도인 음소득세(NIT)의 경우에도 나타난다. 기본소득은 일자리 유무와 상관없이 지급되고 노동소득에 따라 삭감되지 않기 때문에 실업의 덫이나 빈곤의 덫이 없다. 이와 같은 특성은 기본소득이 오히려 노동유인을 높이고 피용자 숫자를 늘릴 것이라는 가설로 이어진다.
2) 소득불평등 시정 효과
조세형 기본소득의 원리는 ‘조세와 배당의 결합’(the principle of tax and share)이다. 재원 마련에는 소득에 비례하여 부담이 가지만 기본소득 지급액수에서는 동등하기 때문에 재분배규모도 가장 크고 사회전체적인 재분배효과도 중산층까지 포함하는 범위로 가장 넓다. 누진률이라면 더 큰 재분배효과가 나겠지만 모든 소득에 동일세율(flat tax)13을 적용해도 기본소득은 정액으로 받고 세금은 정률로 내기 때문에 부자가 부담하는 액수가 더 크다.
비록 전체적인 재분배 규모는 기본소득이 더 크겠지만 저소득층의 소득불평등 개선에서는 선별적 사회부조가 낫지 않겠느냐는 항변이 나올 수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 코르피와 팔메(Korpi and Palme 1998)가 발견한 ‘재분배의 역설’은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동일한 조세제도 하에서 중산층에게 줄 것을 저소득층에게만 몰아준다면 저소득층의 처지가 나아질 것 같지만 조세정치의 작용 때문에 정반대 현상이 나타난다는 내용이다. 중산층 등 다른 계층에서 재분배 규모를 키우는 것에 반대하기 때문이다.14 오히려 가난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정도와 재분배 규모는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고 재분배 규모가 작아지면 가난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몫도 줄어든다. 결국 소득에 따라 과세하지만 이렇게 모인 세수를 모두에게 동일액으로 분배하는 기본소득이 가난한 사람에게도 유리하다.
3) 가계소득의 안정화와 부채의존소비 모델의 탈피
2008년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경제는 장기침체를 모면하지 못하고 있다. 핵심적 원인은 중심국의 부채의존성장의 한계에 있다. 2008년 위기 이후 자산가치경제에 의존하는 부채의존형 소비 가 불가능해지자 세계경제의 또 다른 한 축인 신흥국의 수출주도성장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한국 신자유주의는 중국처럼 수출주도형 경제였지만 내수는 불안정노동의 확산과 임금억제정책으로 인하여 부채의존형이었다. 가계부채는 1200조를 넘어서서 이미 위험 수준이고 저금리로 부채를 늘려 소비를 지탱하는 정책도 한계에 달했다. 이제는 가계 가처분소득에 근거한 소비 모델로 전환할 골든타임이다. 위로부터 아래로의 재분배를 강화하는 조세정책과 결합한 기본소득 제도는 여기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나아가 노동소득분배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져 가는 현재의 상황에서 소득불평등의 시정은 저성장을 벗어나기 위한 전략으로서 논의된다.15 이러한 관점에서 노동시간단축과 일자리 공유를 한 축으로 하고, 기본소득을 다른 한 축으로 하는 정책패키지에 최저임금 인상을 덧붙여 노동체제전환의 트라이앵글을 설계할 수도 있다.16 이러한 정책패키지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기본소득이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에 임금보조금을 주는 꼴이 되지 않도록 한다. 또한 기본소득은 노동자의 개별적 협상력을 높일 것이고 장기적으로 임금상승 효과를 낳을 것이다.17 그래서 기본소득은 단순히 2차 분배의 개선만이 아니라 일자리, 임금, 노동시간 등 1차 분배의 개선 효과도 낳게 된다. 만약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이 가능할 만큼 기본소득이 충분한 액수로 지급된다면 그것은 단지 내수를 살리는 응급처방이 아니라 불안정노동체제를 넘어서 지금보다 훨씬 적은 시간을 노동하면서도 일자리를 원하는 모든 이에게 일자리가 공급되며 충분한 소득을 얻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근본적인 처방이 된다.18
4) 노동시장효과
기본소득이 노동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1) 노동시장 효과와 2) 임금노동 이외의 다양한 활동의 증대 및 이에 따른 다양한 사회적 유용성의 증진이라는 두 측면을 구별하여 고찰해야 한다. 노동시장 효과는 기본소득 지급액수에 달려 있다. 빈곤선 정도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가정할 때, 개별적 노동자의 협상력이 강화되어 노동시간을 단축하거나 질 나쁜 일자리를 거부할 수 있다. 빈곤선 수준의 기본소득에 의지한 질 나쁜 일자리에 대한 거부권은 3D 업종에서 임금인상 효과를 낳게 될 것이다. 계급론과 노조이론으로 유명한 미국 사회학자 에릭 올린 라이트(Eric Olin Wright 2006)가 기본소득에 대해 걸었던 기대인데, 다수의 조합원이 불안정노동자인 미국과 유럽의 서비스노조들은 이러한 이유로 기본소득에 찬성한다.
노동시장효과에서 중요한 지점은 임금수준이 아니라 일자리 문제이다. 이 분야의 많은 연구들은19 발전한 자본주의 경제에서 빈곤선 정도의 기본소득은 개별적인 노동시간의 단축으로 이어지겠지만 전체적인 노동공급을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즉 개별적인 노동시간은 획기적으로 단축되어 일자리가 생기고 고용률이 올라간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사회 전체의 노동시간총량은 노동력절감 기술의 발전과 함께 지속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만약 빈곤선 이하의 기본소득을 도입한다면 이와 같은 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노동시간단축, 고용률 증대, 임금협상력 증대 등 노동시장효과는 전체적으로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5) 임금노동을 넘어선 비시장적인 자유로운 활동의 증대
노동시장효과는 기본소득 도입이 노동시장 내부에 미치는 효과이다. 그런데 위에서 살핀 임금협상력과 고용의 두 측면에서 발생하는 긍정적인 효과는 일자리 여부와 독립적인 소득원천이 생겼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즉 기본소득이 분배와 고용의 연계를 약화시켰기 때문에 거꾸로 고용효과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만약 매우 높은 액수의 기본소득을 도입한다고 가정하면, 전혀 다른 상태가 될 것이다. 분배와 고용은 거의 분리될 것이고 노동유인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 소득과 시간의 분배에서 노동시장의 기능과 역할은 재규정되어야만 할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시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의 두 가지 핵심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이다. 임금노동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작동하는 노동시장은 개별적 노동력을 사회적 생산의 개별적 분지에 배치하는 기능과 임금의 형태로 소득을 분배하는 기능, 두 가지를 한꺼번에 수행한다. 노동계약은 노동의 생산에의 배치와 소득 분배가 한꺼번에 해결되는 사회적 체제이다.20
만약 높은 수준의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이 체제가 흔들리게 될 것이다. 임금노동과 소득의 연계성은 약화되고, 그 결과 임금노동 이외의 다양한 무급 활동이 증대하며 이에 따른 다양한 사회적 유용성이 증진될 것이다. 대다수의 시민들의 복합소득(Income Mix)을 이루는 요소 중에서 노동소득보다 기본소득이 훨씬 더 커지게 될 때, 단순히 노동시장 내부의 변화를 넘어 노동시장의 역할과 기능의 축소로 이어지게 된다. 이와 함께 출산, 육아, 교육 등 사회재생산의 영역과 문화, 예술 등 자유로운 활동의 영역이 성과보수의 강박과 임금노동화의 강박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21 이와 함께 협동적 경제, 사회적 경제의 출현과 발전도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예상은 기본소득이 노동력을 부분적으로 탈상품화하며, 이와 함께 비시장적 주체가 형성되어 공동체 활동이 늘어나고, 일자리의 선택에서 단순히 임금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평가하게 될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한다.
언뜻 노동력의 탈상품화의 유토피아로 이해되기 쉬운 이러한 예상은 인공지능, 로봇, 사물 인터넷, 빅 데이터 등이 중심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에 의한 고용의 위기가 다가오면서 조금 더 현실성을 가지게 되었다. 2016년 WEF의 ‘미래고용보고서’는 인공지능과 로봇,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등 기술 혁신에 따라 향후 5년간 전 세계에서 일자리 500만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4차 산업혁명이 완료되면 현존하는 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이라고 옥스퍼드 대학의 보고서는 예측했다.22 4차 산업혁명이 완료되면 높은 수준의 기본소득을 통해 고용 없는 소득을 보장하여 한편으로는 소비를 부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창업효과를 유발하는 것 이외에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유지할 다른 방법이 없게 될 수도 있다.
6) 생태보너스(Ecobonus)와 생태적 전환
기본소득은 투자친화적인 재정, 통화, 인프라 정책에 의존하여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생산주의적 압박(productivist pressure)을 감소시킴으로써 생태적 전환에 기여한다. 자본주의 경제는 만성적 실업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공공투자 주도이든 민간주도이든 매번 더 많은 설비투자를 통하여 실업문제를 해결해 왔다. 이와 같은 생산주의적 해법은 이미 생태적 한계에 부딪쳐 있다. 또한 최근에는 더 많은 투자는 더 많은 기술혁신을 낳고 오히려 일자리를 줄이는 경향을 보인다. 기본소득은 노동시간단축과 일자리 공유의 효과를 낳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 즉 아주 높은 기본소득이 도입될 경우에도 실업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 것이다. 분배와 고용의 분리는 생산주의적 압박을 줄이고 경제를 성장주의의 덫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기본소득의 생태적 효과는 이와 같은 거시적인 생태경제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조세배당(the Principle of Tax and Share)의 측면에서도 엿볼 수 있다. 생태세를 재원으로 하여 1/n로 분배되는 생태배당을 실시한다면 생태세율을 높일 수 있고 경제의 생태적 전환을 강제할 수 있다. 생태세와 생태배당의 결합은 저소득층의 저항 없이 생태세를 올리는 효과적인 방법이다.23 이는 저소득층의 에너지평등권을 보장해 주면서도 생태세율을 높일 수 있고 결국 에너지소비를 훨씬 더 많이 하는 기업들에게 생태부담을 높이는 방법이다.24 이러한 방식은 저소득층의 에너지 기본권이 보장되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의 기초 위에서 지속적으로 생태세율을 올려서 리바운드 효과를 방지하는 데에서도 매우 효과적이다. 리바운드 효과가 나타나면 생태세율을 더 올릴 수 있을 것이고, 생태세율을 올리면 올릴수록 자원소비를 줄어들고 유해물질을 줄이는 절감기술은 더 발전하게 될 것이며, 사회 전체는 에너지저소비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기술혁신의 전망에 맞추어 생태세율 인상폭을 적절하게 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7) 복지국가의 거래비용 절감
우파의 기본소득 찬성론에는 행정비용 절감이 반드시 들어있다. 그런데 복지국가의 거래비용은 행정비용 같은 직접비용 뿐만 아니라 간접비용도 포함된다. 직접비용도 규제, 감독, 심사에 드는 비용뿐만 아니라 홍보에 들어가는 비용도 포함된다. 반면에 간접비용은 사람들을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클라이언트로 변화시킴으로써 발생하는 비용이다. 생계수준의 기본소득(subsistence-level basic income)의 도입과 함께 심사, 감독, 홍보에 들어가는 직접비용은 절감되고 인력과 재정을 현물 공공복지 전달체계로 돌릴 수 있고, 간접비용도 상당 부분 피할 수 있다. 기본소득 수혜자는 일부가 아니라 모두이며 조건부 복지수혜자와 달리 수동성을 탈피하고 활성화될 것이다.
8) 실질적 민주주의
기본소득은 사회보장체계에 처음으로 시민권의 원리(Principle of citizenship)가 도입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25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든지 자산이나 고용 여부와 무관한 소득을 지급받는다. 기본소득과 더불어 사회구성원 모두는 참정권만이 아니라 소득기반에 있어서도 일정한 공통성을 가지게 된다.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일정 소득이 부여된다는 것은 비로소 자유의 실질적 기초가 생긴다는 뜻이며, 이와 함께 정치공동체는 ‘갈등적 개인주의의 사회’에서 ‘협동적 개인주의의 사회’(a society of cooperative individualism)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민주주의에 실질적 기초를 부여함으로써 민주주의 위기를 해소하고 정치를 재활성화 한다.26
3. 기본소득과 다른 제도의 효과 비교 – 5가지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Guy Standing, Basic Income: And How We Can Make It Happen, 2017, p. 214)
1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홈페이지: http://basicincome.org/basic-income/
2 이는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한국의 4개국 기본소득네트워크와 유럽기본소득네트워크(UBIE)가 제출한 정관개정안을 지구네트워크가 권고안의 형태로 수용한 것이다.
3 피츠패트릭은 1998/99년 물가를 기준으로 영국에서 주당 £45에서 £50 정도의 기본소득이 조세개혁 없이도 당장 실현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는 이와 같이 낮은 기본소득은 선별적인 주거수당 및 장애수당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병존해야 한다고 보며, 따라서 주거수당과 장애수당을 합친 현금이전은 최대 £61 정도로 평균소득의 11~15%에 달한다. T. Fitzpatrick(1999), p. 39을 보라
4 기본소득과 다른 복지제도의 비교에 관해서는 개괄적으로 P. Van Parijs et l.(2000)을 보라.
5 Milton Friedman(1962)와 M. Friedman/K. Leube(1987)을 보라. 프리드만의 역소득세 모델은 지급할 기본소득 액수를 최저소득선을 정한 후 그 이하에 대하여 현금급여를 제공하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평률세(flat tax)로 과세하는 모델이다. 현금이전을 실시하는 최저소득선으로 인하여 평률세임에도 누진세 효과가 발생한다. 프리드만 모델은 ‘빈곤 갭’(poverty gap) 유형의 역소득세 모델인데, 1940년대에 이미 리스-윌리엄스(Juliet Rhys-Williams)가 이와 조금 다른 ‘사회배당’(socialdividend) 유형의 역소득세를 제안했었다. ‘빈곤 갭’ 유형과 ‘사회배당’ 유형은 조세기술상의 차이이고 결과는 동일하다.
6 Philippe Van Parijs(2005), p. 15-16을 보라.
7 브루스 액커만, 앤 알스톳, 필리페 반 빠레이스(2010)을 보라.
8 토마스 페인은 만 21세가 될 때 15 파운드를 한꺼번에 지급하고 만 50세 이상에 대해서는 매년 10 파운드씩 지급하자고 제안한다. 15 파운드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7,500 달러 정도이다.
9 참여소득에 대해서는 개괄적으로 A. B. Atkinson(1996)을 참조하라.
10 C. Pérez-Muñoz(2016), p. 169; De Wispelaere and Stirton(2007), p. 524.
11 서울시 홈페이지 http://youthhope.seoul.go.kr/#page1부터 #page10까지를 보라.
12 T. Fitzpatrick(1999), p. 27.
13 동일세제와 기본소득의 관계에 대해서는 Parncutt(2012)을 보라.
14 Korpi and Palme (1988). 코르피와 팔메의 역설은 <가난한 사람에게 재분배되는 금액 = 가난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정도 × 재분배 규모>로 표시되는데, 재분배 규모가 일정하다면 가난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정도가 커질수록 가난한 사람에게 재분배되는 금액은 커져야 된다. 하지만 재분배 규모는 상수가 아니고 조세정치적인 요소가 작용하는 변수이다.
15 소득불평등이 저성장의 원인이라는 인식은 최근에 널리 퍼졌다. 2012년 ILO의 라보이에(M. Lavoie)와 스톡햄머(E. Stockhammer)는 친노동적 분배가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임금주도성장론을 주장했다. 2014년에는 OECD가 비슷한 입장을 표명했고 2015년에는 심지어 IMF도 “상위 20%의 점유율이 1% 증가할 때 이후 5년 동안 GDP는 0.08% 포인트 감소”하는 반면에 “하위 20%(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점유율이 1% 상승하면 0.38%p의 고성장”으로 이어진다고 진단했다. 남는 문제는 소득불평등을 해소할 구체적인 방법이다. ILO의 스톡햄머는 임금격차 해소, 최저임금 인상 등을 제안했다. 미국과 일본에서의 최저임금 인상, 독일의 최저임금제 도입 등은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다. 이는 분명 근로빈곤층의 소득을 향상시켜 소비가 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노동소득분배율 하락의 원인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임금격차를 만드는 불안정노동체제가 존속하는 한에서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은 구조적인 문제로 남는다.
16 Min Geum(2014); 금민(2015a); 금민(2015b)를 참조하라.
17 Eric Olin Wright(2006)을 참조하라.
18 기본소득과 노동시간단축 및 일자리 공유의 연동은 매우 오래된 생각이다. 이미 1990년대에 앙드레 고르츠(André Gorz 1999)가 그러한 발상을 펼쳤다. 기술혁신으로 일자리가 줄어들지만 취업자는 장시간 노동을 하는 상황에서 그는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여 원하는 모든 사람이 일자리를 공유하고, 노동시간단축으로 줄어든 소득은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보상하자고 제안했다.
19 대표적으로 L. Groot(2004); C. Offe(2008); G. Vobruba/M. Opielka (1986); G. Vobruba(1989); G. Vobruba(1990); Mideros and O’Donoghue(2014).
20 C. Offe(2008)을 보라.
21 앙드레 고르츠(A. Gorz 1985; 1989)는 기본소득에서 ‘노동사회로부터 활동사회로의 이행의 길’을 읽어낸다.
22 일자리가 급감하지 않더라도 불안정화는 훨씬 더 심해질 것이다. 자동화로 2020년까지 미국 피고용자의 40%가 ‘긱 경제’(gig economy)에 종사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트럼프 식의 보호무역주의도 자동화 추세 앞에서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3 U. Schatzschneider(2014); P. Barnes (2008): F. Ekardt (2010).
24 예컨대 화석연료와 전기에 고율의 생태세를 부과한다면 절감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을 강제할 수 있고 에너지 저소비 사회로 이끌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사회적 한계가 따른다. 높은 생태세는 저소득층의 에너지 평등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독일의 적록연정이 부딪쳤던 문제이다.적록연정은 세수의 일부를 연금부족분의 충당으로 돌렸기 때문에 생태세 효과는 역진적이기까지 했다. 독일의 연금제도는 적립식이 아니라 부과식인데 연금보험료 징수분이 부족하면 고액 연금수령자에게 지급될 몫부터 삭감하기 때문이다. 결국 저소득층에게 생태세를 걷어 고액 연금수령자의 연금을 지급한 꼴이 되고 말았다.
25 T. Fitzpatrick(1999), p. 46.
26 보통선거권에 기초한 대중민주주의는 보통교육과 노동자계급의 물질적 독립성을 전제하였다.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대중민주주의는 보통교육과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완전고용이라는 기초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불안정노동의 확대로 교육을 받지도 못했으며 안정적인 소득기반도 가지지 못한 “새로운 사회계급”으로서 ‘프레카리아트’(Guy Standing)가 등장했고 대중민주주의의 위기의 원인이 되었다. 엘리트지배와 극우포퓰리즘은 위기의 두 양태이며 동전의 양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