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역사기행 보고]

양다혜/ 서울지부 코디네이터

5월의 햇살이 부서지던 어느 날, 우리는 광주의 시내를 함께 걸었다. 전남대에서 광주역으로, 광주역에서 시장으로, 시장에서 도청으로… 거리를 걸으며 보았던 풍경들은 내가 살던 동네의 풍경과 닮아 있어서 처음엔 평범한 동네 길들을 산책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으면서 이 평범한 동네에서 살아가다가 폭력과 죽음을 마주했을 사람들이 자꾸 그려졌다. 평화로운 풍경 속에 총탄이 울리고, 사람들이 쫓겨 다니고, 죽어가는 풍경이 눈에 그려지듯 보였다. 광주의 거리 곳곳에는 기림비가 세워져 있었다. 최초 발포지, 계엄군에 의한 최초의 희생자가 발생되었던 곳, 마지막 항전지였던 전남도청 등….. 평범하고 평화로운 풍경 앞에서 그 당시의 참상을 알리는 것은 낡은 비석 하나가 전부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 낡은 흔적 앞에서, 거리 곳곳에서 여전히 80년 광주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주한 80년의 광주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만약, 1980년 5월의 광주에 내가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37년 전 사람들은 왜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 도청에 남았을까”

 
광주의 거리에서 만난 질문들은 광주항쟁 생존자들과의 간담회에서도, 투사회보 만들기 시간에도 이어졌다.

다음 날,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망월동 묘역을 찾았다. 묘역에는 518 광주민중항쟁 때 희생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국가 폭력과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묘지가 안장되어 있었다. 그 중에는 2년 전 민중총궐기에서 국가 폭력으로 목숨을 잃었던 백남기 농민의 묘도 있었다. 우리는 조용한 묘역을 함께 걷고, 이곳에 묻힌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헌화를 하고 묵념을 했다. 그리고 수많은 꺾이지 않은 삶들을 마주했다. 치열하게 한 생을 살아갔던 열사들의 삶에, 그 때의 마음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고요한 광주 묘역을 걸으면서 함께 있는 자원활동가들을 괜스레 바라보게 될 때가 있었다. 나와 내 주변사람들이 37년 전 광주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내 소중한 사람들이 계엄군에게 참혹하게 죽어갔다면 아마 나 역시도 금남로로 향하지 않았을까. 묘역에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삶이 통째로 바뀔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이웃의 아픔을 눈감지 않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온 몸 바쳐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활동가들을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게되었던 것 같다.

세월호가 인양된 목포 신항을 방문했다. 철조망을 빽빽하게 채운 노란 리본 너머로 누워있는 세월호가 보였다. 3년만에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는 멀리 있어서인지 작게만 보였다. 멀찌감치 서서 배가 가라앉았던 순간을, 그 순간 죽어갔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참사 이후 사회를 바꾸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 이 배를 인양시키기 위해 3년 동안 평범한 삶을 저버리고 투사가 되었던 유가족들을 생각했다. 알 수 없는 감정들 앞에서 가만히 그 풍경을 바라만 보았다. 세월호가 누워있는 목포 신항은 광주의 518 묘역만큼이나 고요하고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묵직함이 마음을 내리 눌렀다.

열사들이 잠들어있는 광주 518 묘역과 세월호가 누워있는 목포신항을 다녀오며, 우리는 평화란 무엇인지 다시금 질문했다. 우리에게 평화란 단순히 잔잔하고 고요한 일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위에 있지도, 누가 아래 있지도 않은 평등한 관계를 바탕으로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부단한 발걸음의 방향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광주역사기행을 통해 그 평화를 만들고 지켜나가기 위해서 삶을 바쳤던 사람들을 직접 마주할 수 있었다.

 

 


[수기공모전 수상작]

평화(花)

승연

노란
민들레 피어나
서늘한 봄을 맞는다

밖은 아직 추운데
누가 깨웠는지 몰라
그냥

봄비가 내려서
내 작은 씨앗에 스미는데
그 눈물이 아파서
뜨겁게 피었다

봄바람이 불어서
고개든 풀잎을 보듬는데
그 마음이 벅차서
뜨겁게 피었다

저무는 해 앞에
노란 민들레
붉게 타오르다

완연한
봄 오기 전에
하얗게 새버렸다

노을을 사랑하여
바람을 사랑하여
하얗게 새버려도
저 먼 세상으로 가나니

비로소 더운 날
한 줌 되어 흩날리는데
이런 얘길 나눴다지

봄바람 불어오면
80년 이날처럼 피어나자
그때는 외롭지 않게
같이 뜨거운 노을을 맞자

노란
민들레 밭을 약속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