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캠프를 처음 접한 날이 살인적인 더위를 기록한 여름이었는데 벌써 선선한 바람이 부는, 때로는 춥기까지 한 가을이 되었다. 여름 캠프를 끝나고 인연 맺기 학교를 시작했다. 함께 했던 선생님들을 계속 만나고 싶었고 여름 캠프 때 즐거워하던 어린이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매주 토요일, 인연 맺기 학교를 시작하게 되었다.지금의 짝꿍 도우에게 나는 미안함이 많은 선생님이다. 우선 도우는 체력이 넘치고 뛰어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지금 내 발목이 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서 항상 다른 선생님들께 도우를 부탁드리고 앉아있기만 한다. 또 도우는 종이접기, 만들기를 좋아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만들기에는 전혀 소질이 없다. 집에서 종이접기 방법을 찾아보고 친해질 방법을 찾아가고 있지만 일단 지금은 같이 뛰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아쉬울 뿐이다. 언젠가 나들이를 갔을 때 도우랑 손을 잡고 ‘그리스로마신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길을 걸었다. 도우의 관심 분야를 미리 알아가 질문하고 같이 나누면서 비록 친해졌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도우와 함께 대화하는 방식을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 기분 좋은 날이었다.

이번 주 인연맺기 학교는 바람개비, 도토리, 완두콩이 모여서 하는 합동 운동회였다. 나는 여름 캠프 때 만난 어린이들을 볼 수 있어서 기대되었고 뛰어다니기를 좋아하는 도우가 마음껏 놀 수 있을 것 같아서 내심 기다리고 있던 날이었다. 준비를 마치고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반가움에 크게 인사하면서 설레었었다. 아이들은 나를 기억 못 할지언정 여전히 밝은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내 얼굴에는 운동회가 끝날 때까지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운동회는 준비해 주신 선생님들 덕분에 잘 진행되었고 나는 완두콩 어린이들과 함께 먼저 수원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내려가는 길에 도우는 놀이터에서 나의 말을 무시하고 노는데 바빴고, 전철역으로 오니 혜승이가 울고 있었다. 기차 시간은 정해져 있었고 지체되는 곳이 전철역이라서 나의 마음은 조급했었다. 어쩔 줄 몰라 하시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도우를 먼저 보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혜승이에게 집으로 가는 것이라는 설명과 앉아있을 시간을 약속하였고 그 시간이 지난 후 고맙게도 혜승이는 방긋방긋 웃으면서 잘 따라와 주었다. 수원으로 가는 길에 전혀 고생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 명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도착한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나의 짝꿍 도우에게는 항상 같이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나는 아직 인연맺기 활동은 한 달밖에 하지 않았지만, 아직도 내가 잘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나도 모르게 올라가는 언성과 그 후에 따라오는 후회, 같이 열정적으로 놀아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항상 남아있다. 많은 사람이 나에게 ’이 활동으로 네가 얻는 것이 뭔데?‘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이제 슬슬 네가 뭐하면서 먹고살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니? ‘라는 말을 하고는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내가 좋으면 된 것 아닌가? 라는 말이 가장 먼저 든다. 꼭 행동에 보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좋은 일 하시네요‘, ’너 그 활동에 맛 들였구나’라는 말은 사실 기분이 나쁘다. 좋은 일에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평화캠프 활동은 나에게는 ’좋은 일’이 아니라 ‘즐거운 일’이다. 나의 이름을 기억해주고 먼저 손을 잡아주는 그 사소한 행동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매주 토요일이기 때문이다.

매주 아이들을 보면서 또는 선생님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문득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만날 세상에 대해 서글픔을 느낀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몇몇 사람들에게서 받는 ‘시선’,  꼭 말로 하는 폭력이 아닌 오직 ‘시선’으로 받는 차가움이 더욱 무서운 법이고 무언에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상처로 남는 법이니까…. 그래서 나는 아니 인연 맺기 학교를 하는 ‘우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따듯함과 즐거움, 매주 토요일의 시간과 공간을 오랫동안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같은 바람으로 평화캠프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한 달 남짓 남은 인연 맺기 활동의 작은 바람이 있다면 우리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즐거움과 웃음으로만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다.

/ 허세윤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