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3 도토리인연맺기학교] 간식과 줄다리기

정우를 만난지 벌써 삼 년이 지났다. 대학 새내기였던 나는 휴학까지 마친 사망 직전의 사망년이 되었다.


 아이들은 신기하다. 뒤를 돌면 어느새 눈높이가 달라지고, 놓은 손을 다시 잡기가 무섭게 부쩍 커 있다. 처음 봤을 때, 정우는 너무 작고 귀여워서 도토리의 ‘아기천사’로 불렀다. 활동 중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짝꿍 선생님을 당황하게 하는 행동을 하지 않아서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는 선생님들은 정우의 짝꿍 선생님을 부럽다고 했었다.


 나는 그 때 몸을 많이 써야 하는 선생님 중 하나였지만, 몸을 정말 많이 써야 했었기에 정우가 어떤 방식으로 활동하는 아이였는지 볼 새가 없었다. 아이들이 모일 때 보고, 헤어질 때 보는 정도로만 정우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학기가 시작되고 정우와 짝꿍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정우와의 첫 활동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여러번 지하철과 버스의 표지판을 읽어주었던 것만 스치듯 생각에 남았다.
 

정우와 여섯 학기와 네 번의 캠프를 같이 간 지금, 정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면 정우는 정말로 천사같은 아이다. 초콜렛을 좋아하고, 자기 주장이 있고, 신이 나면 손가락을 들고 몸을 흔든다. 자기가 귀여운걸 너무도 잘 아는 동그랗고 순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내가 무슨일을 못 하게 하면 특유의 목소리로 “아이 씨!”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한다. 정우가 천사같은 이유는 앞서 구구절절 나열한 이유를 제친 명료한 한 가지 이유에서다. 정우는 나를 좋아한다. 나도 정우가 좋다.


 서론이 길었다. 저 네 단락의 글을 요약하면 이번 학기에 정우와 짝꿍이 되어 무척 기쁘다는 이야기다. 이제 13일에 어린이 대공원 나들이 후기를 쓰겠다….지하철 이동시간이 길고 환승방법이 복잡했다. 성신여대(4)-동역사(5)-군자(7)-어린이 대공원 이라는 대 장정을 지났다. 다행히 정우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부쩍 즐거워한다. 지하철역에 모이면 금방이라도 게이트를 넘어 지하철을 타고 싶어서 손이 꼼지락거리는게 눈에 선히 보인다.하지만 지하철타기에 염증이 나고 서 있는것도 싫고 사람 바글거리는것도 싫은 짝꿍쌤은 눈이 번쩍번쩍 빛나는 정우를 옆에 두고 녹초가 되어갔다.. 그리고 이 때 까지는 정우가 배가 덜 고팠던 것 같다. 


 어린이 대공원에 도착하자마자 정우는 지하철에서 약속한 ‘내리면 젤리 먹기’를 실천했다. 내리자마자 하리보를 야무지게 까서 냠냠 먹더니, 베이스 캠프가 된 정자에서는 간식을 먹고 싶어했다. 저번 활동때도 배고픔을 호소했던 정우라서 이 주 연속 ‘조금만 참자’ 기술을 쓰기엔 나도 지치고, 정우에게도 미안했다. 특히나 정우는 정말로 너무너무 귀엽기 때문에 울망한 눈빛을 받으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진다… 하지만 우리의 간식시간은 산책시간이 끝난 한 시간 후니, 정우에게 간식을 줄 수 없었다.


 같이 정자에 남은 우리 누리 쌤(<3)과 “정우 간식 버티기” 에 힘을 쏟았다. 정신을 돌리려 산책도 가자고 하고(배가 고프다며 다시 정자를 가고싶어했다), 사자와 코끼리로 유혹도 해 보고(배고픔이 호기심을 이겼다), 비눗방울도 한바탕 했다(오히려 더 배고파졌다). 이 모든걸 다 하고 나니 15분이 지났다 ! 정우는 3분에 한 번 몽쉘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반질반질한 눈으로 바라보았고, 나는 머리에 온 힘을 주어 다시 몽쉘봉지를 가방에 넣었다.  정우도 나도 누리쌤도 슬슬 ‘간식을 기다려야 하는 이유’ 소재가 떨어지고 있던 찰나, 정우가 평소에 손목시계를 보며 짜증을 내는 시늉을 하는게 기억났다. 그래서 정우에게 내 배트맨 시계를 차 주니 시계를 보고 무려 45분동안이나 즐거워했다. 다크나이트가 오늘도 한 건 했다는데 뿌듯함을 느끼며 소소하고도 즐겁게 간식 시간을 기다렸다.


 간식 시간이 되자 게 눈 해치우듯 몽쉘과 빼빼로를 슥삭 먹었다는건 말 할 것도 없고, 기운이 생겨서 주변의 짝꿍 쌤들과 인사를 하며 놀러 다녔다. 정우는 나를 가장 익숙하게 여기지만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곧잘 인사를 하고 관심을 보인다. 나는 그럴 때 한 발 떨어져 내가 간섭하지 않고 정우가 정우의 방식대로 소통하는걸 지켜본다. . . .. …….


 지켜봐야 했다… 다른 아이랑 수다를 떨다 정우를 시야에서 놓쳤었다. 그 때 정우가 유빈이에게 시비를 걸다(시비를 건다는건 유빈이의 시점이고, 정우는 유빈이의 반응이 재미있어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슬슬 자극하는 것 같다) 한 대 맞고, 유빈이도 유빈이대로 화가 났다. 

 나는 정우가 이럴때면 속상하다. 정우가 여타 초등학생처럼 반응이 큰 아이를 약올리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빈이에게 맞고 엄청나게 울망울망한 눈으로 나에게 다가오면 내가 정우를 소홀히 했나, 그래서 다시 관심을 달라고 그러는 건가… 내 관심이 모자라 일부로 맞는건가… 하는… 너무도 ‘나’중심적이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울적한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니 정우한테 속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정우도 좋고 유빈이도 좋은데.. 유빈이가 정우를 때리면, 유빈이는 유빈이 짝꿍쌤에게 혼나고 정우는 나한테 혼난다. 모두모두 혼만 나는 상황이 생기는게 찜찜한 것 같다…

 하여튼, 이 때 있었던 일이 대한 해결책으로는

1. 정우에게 중간 간식 시간을 준다.: 정우가 너무 배고파 할 때면 활동 자체를 못 할 때가 많으니, 준비한 간식의 반절을 중간 간식시간에 먹고, 나머지를 친구들과 함께 먹는다. 중간 간식 시간은 다른 도토리 아이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조심스레 몰래 먹는다.
2. 수민쌤과 유빈이 근처에 갈 성 싶으면 다른곳으로 시선을 유도한다.: 말 그대로다. 넘 좋아하는 수민쌤이랑은 뒷풀이 때 많이 이야기 나눠야겠다.
3. 베이스 캠프 선정 시, 혹은 활동 공간 설정 시 근처에 어린이 박물관 등등 입장료를 받는 어린이 시설이 있는지 살펴보아도 좋겠다. 말하면 관심을 금방 돌렸지만, 정우가 베이스 캠프 옆 박물관에 너무도 들어가고 싶어했다.인 것 같다.


정우와 유빈이가, 나와 수민쌤 모두가 행복할 도토리 활동을 하려면 조금 더 신경을 써야 겠다. 화이팅 ! ! !

/ 자원활동가 이아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