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0 도토리 인연맺기학교] 우리 여기 있어요

우리 여기 있어요

오늘 활동에 쓴 플래카드 문구 “우리 여기 있어요” 처음의 의도는 정확히 모르지만 나에게 있어 이 문구는 어디에 빈칸을 두느냐,어떤 말로 빈칸을 채우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이봐요) 우리 여기 있어요

(이봐요) 우리 여기 있어요 는 우리의 존재를 지우지 말라는 호소가 된다.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소수자성은 절대 온전히 이해될 수 없다. 내가 속한 여성이라는 카테고리조차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찌 다른 경험과 감정을 온전히 내재화할 수 있을까. 매주 인연맺기를 다니면서도 매시간 나의 무지와 오만을 깨닫게 된다. 완전한 이해 공감은 바라지도 않는다. 단지 우리의 존재를 지우지 않았으면 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 사회의 지배적 가치인 효율성에 위배된다고 해서, 한 순간의 동정으로 내 맘이 편해졌다고 해서 엄연히 존재하는 우리가 없어지진 않는다.

우리 여기 (그냥) 있어요

우리 여기 (그냥) 있어요는 무언가를 극복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 존재의 표현이 된다. 우리 사회는 역경을 극복하는 걸 참 좋아한다. 헬렌 켈러도 올림픽 영웅도, 자소서 3번 문항도 역경을 극복해야 완성된다. 하지만 자소서 3번 문항에 무척이나 고민을 해야하는 수많은 평범한 나들의 인생이 미완성인 건 아니다. 같은 맥락으로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그것을 극복해야만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왜 그냥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사람답게 살면 안되는 걸까? 물론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 이 사회야말로 우리의 역경이니 원하는 대로 극복해주는 것도 좋겠다. 우리는 장애가 아닌 이 사회를 극복해야 한다.

오늘의 나에게 이 빈칸은 이렇게 채워진다.

우리 여기 (함께) 있어요
우리 여기 (즐겁게) 있어요

오늘의 인연맺기는 화창하고 따뜻했다. 우리는 함께였고 즐거웠지만 한편으로는 이 즐거움이 이 공간 밖에서도, 나아가 활동참여자들이 성인이 되어 살아갈 사회에서도 이어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고민들이 연대가 되고 오늘의 즐거움이 거름이 되어 민들레가 가득한 날이 오기를 바란다.

/ 자원활동가 조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