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을 하든, 날씨가 제일 걱정이다. 비가 오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당장 비라도 내릴 듯 우중충하다. 비가 내릴까 노심초사했던 첫 번째 자원 활동이 다시 생각난다. 그땐 자원 활동이 끝나자마자 비가 제대로 내리기 시작해 나름 좋은 징조로 받아들이며 기뻐했었는데.
집 근처에서 아들 친구를 만나 인천대공원역으로 갔다. Grand Park라는데 이 넓은 곳에서 행사장은 어떻게 찾을지. 물어물어 행사장으로 가는 길, 벌써 진 줄만 알았던 벚꽃이 한창이다. 잿빛 하늘을 무색하게 만들어주는 꽃향기와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꽃잎들. 행사장까지 한참 헤매며 갔는데도 속상함이 덜했던 건 아마도 꽃길 덕?
도착하니 지구의 날 행사 부스 주변이 벌써 부산스럽다. 우리 부스로 가보니 멘토 선생님들이 빠짐없이 다 계시다. 한참 중간고사 볼 시긴데 아침부터 서둘러 나서준 그 마음들이 상상돼 기특한 생각이 든다. 물론 바쁜 일정 다 미루고 시간 낸 나도 기특하고, 아무튼 기특한 마음들이 많이 모일수록 이런 멋진 자원 활동이 만들어지겠지^^
오늘 우리가 할 일은 계피 스프레이와 탈취제 만들기. 제작은 간단하지만 재료 준비에 고생이 많았다. 계피도 미리 숙성시키고, 라벤더 오일을 사기 위해 낯선 길도 나서고, 공병도 주문하고, 병에 붙일 스티커도 만들며 한 주간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준비된 재료를 보기 좋게 진열하고, 자 이제 1조부터 시작이다.
2조인 우리는 부스 운영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다른 부스들을 서둘러 체험했다. 아이들이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나무피리 만드는 부스. 친절하게 제작방법을 설명해 주시니 쉽게 따라한다. 나무에서 삑삑 소리가 나는 게 신기했는지 다른 부스를 체험하면서도 계속 불어댄다.
버리는 조각 천을 이용해 브로치도 만들고, 퀴즈를 맞춰 팝콘도 받고 서둘러 여러 부스를 체험하다 보니 우리 조가 부스 운영을 맡을 시간이 됐다.
우리 부스를 찾아가니 신기하고 놀라운 광경. ‘아무래도 부스 운영을 아이들에게 맡기는 건 어려울 것 같으니 멘토 선생님들이 진행하고 아이들은 옆에서 도움을 주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요?’라고 했던 우리의 예상과는 많이 다르다. ‘얘네 어디서 이런 일 하다 왔나?’ 싶게 체험자들 응대가 능숙하다. “어서 오세요, 계피 스트레이와 천연탈취제 중 하나를 선택해 만들어 보실 수 있으십니다. 어떤 걸 만드시겠어요? 아, 예, 계피 스프레이요? 계피 스프레이는…”
첫 번째 자원 활동을 끝내고 아이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다는 평가를 했었는데, 그 평가가 매우 주요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1조의 송우는 잠시 부스 운영을 멈춘 점심시간에도 자기가 그냥 5조 시작 시간까지 계속 하고 있으면 안되겠냐고 물어봤다. 뭐든 재미있어 하고, 뭐든 하고 싶어 하는 너희들이 진짜 부럽구나ㅜㅜ
내가 청소년 자원 활동에 관심과 열의를 갖게 된 건,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됐다. 5년 전, 평화캠프 도배 자원 활동을 시작한 후 보람이 커서 남편에게도 권해 부부가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이왕이면 가족 모두가 참여하면 더 좋을 것 같아, 한번은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갔는데 막상 셋이 가보니 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아직 도배는 힘들겠구나. 그렇다면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자원 활동이 뭐가 있을까 싶어 그때부터 열심히 찾기도, 묻기도 했다.
그런데 초등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자원 활동이 마땅치도 않고 또 적당한 일이 있더라도 혼자 참여해야 하거나 이미 친한 가족들끼리 모여 하는 일이라 여기에 끼기도 쉽지 않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다양한 자원 활동이 가능한 연령대 학생들은 이미 자원 활동이 입시 스펙이 되어버린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만들게 된 것이, 평화캠프 청소년 자원 활동 프로그램이다. 아직은 두 번의 경험 밖에는 없고, 무엇보다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을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가끔은 재미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해서’ 싶을 때가 더 많다.
하지만 이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내게는 신경 쓸 일이 많아 고단했던 하루가 청소년 자원 활동가들에겐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특별한 하루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다. 환경 문제를 함께 고민했던 1기 청소년 자원 활동가들은 텀블러 사용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일회용품 사용을 일상적으로 고민하고, 갯벌 매립이 당연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되리라는 기대가 있어서다.
한 달에 한번 청소년 자원 활동, 모두가 바라는 ‘미래의 모습’으로 ‘미리 살아볼 수 있는 시간’이다. 소중한 시간이다.
고유미 자원활동가 (‘평화캠프 청소년 자원 활동’ 멘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