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9 서울인연맺기학교] 물 한 잔 건네주는 마음으로
올 해 계절은 참 거북이 같아서 시간의 흐름이 실감나지 않을 때가 많다. 6월의 둘째 주 토요일, 9주차를 달려온 서울 인연맺기학교의 봄 학기 졸업식이 있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여름의 문턱이지만 여전히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날이었고 여느 때처럼 어린이들을 기다리고 일주일 만에 만났던 쌤들이 반가웠던 평범한 하루였다. 평범하게 시작했던 하루여서 학기의 마지막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마지막 날이어서일까, 프로그램을 기획하신 선생님들은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다 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화채 해먹기, 찰흙놀이, 산책 등등 프로그램이 알차게 짜여있었다. 여느 때보다 조금 더 바쁘게 프로그램 준비를 하고, 졸업식 공간을 꾸몄다. 오늘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엠티를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엠티에 가는 장도 미리 보느라 바빴다. 조금 시간이 남았을 때는 다들 짝꿍 어린이와 한 학기동안 자신의 마니또였던 선생님들께 편지를 쓰기도 했다.
마지막 날이어서인지 유난히 어린이들이 일찍 도착했고 도착한 어린이들과 홍제천으로 향했다. 홍제역 부근에 서 매주 활동을 하면서도 그 예쁘다던 홍제천 산책을 이제야 한 게 아쉬웠다. 다음 봄에도 이곳에서 활동을 한다면 벚꽃이 피었을 때 같이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센터를 지키고 다음 프로그램 준비를 하느라 산책에 적극적으로 합류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사진으로 만나본 어린이들과 선생님들은 편안하고 즐거워보였다. 손을 잡고 걷고 비눗방울을 호호 불고 함께 웃고 있던 모습들이 예뻤다. 정신없이 매주 토요일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시간도 마음도 이렇게 예쁘게 쌓여 있었다.
산책이 끝나고 나서는 마트에서 함께 장을 보고 화채를 만들어먹었다. 예산 때문에 수박을 넣진 못했지만 새콤달콤한 과일들에다가 얼음과 탄산음료를 부어서 만든 화채는 꿀맛이었다. 화채를 나누어 먹고 나서는 클레이로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들을 만들었다. 작은 손으로 만드는 걸 보면 어린이 한 명 한 명이 가진 매력이 보였다. 은비는 조용조용히 클레이를 받아가면서도 열심히 예쁜 체리와 구름 같은 것들을 만들었다. 준서는 분홍, 연두, 하양 등 과감한 색들을 조합해서 개성 있는 달팽이를 만들었다. 검은색과 초록색을 좋아하는 진이는 두 가지 찰흙을 섞어서 가지고 놀았다. 비록 목표했던 냉장고 자석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어린이들이 즐거웠으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석을 만들고 같이 정리하고 나서는 알림장과 종이에 이번 학기에 가장 기억이 남는 순간을 그려보기로 했다. 선생님들과 어린이들이 한 학기동안의 추억들을 조근 조근 나누며 그림일기를 적는 걸 보니 그제야 한 학기의 마지막이 성큼 다가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풍경을 보며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일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답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매 주의 토요일이 나에게는 즐겁고 따뜻한 기억들의 연속이었다. 늘 어린이들과 쌤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활동한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내가 받은 것이 더 많았다.
다 같이 발표하는 시간에 여간해서 발표하지 않는 동현이가 손을 들었다. 동현이는 자신이 만든 것과 그린 것들을 씩씩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더니 마지막에 “한 학기동안 선생님들과 함께해서 즐거웠어요” 라고 덧붙였다.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면 지나가는 한 마디였겠지만, 동현이에게서 듣는 그 인사 한 마디는 마음에 꽂혔다. 예상치 못한 한 마디에 나는 물론이고 주변 쌤들도 순간 굳었다가 박수를 쳐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학기동안 동현이는 나와 선생님들에게 많은 고민을 던져준 아이였고, 때로는 밉기도 했고 미운만큼 사랑스럽기도 했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유난히 욕도 많이 하고 다른 친구들에게 상처 되는 말들도 툭툭 던지기 일쑤라서 한 학기동안 나는 동현이에게 엄하게 대하거나 의도적으로 그의 행동들을 무시할 때가 많았다. 혼내는 역할도 필요해서 그렇게 대했지만, 그럼에도 늘 마음에 걸렸다. 늘 혼내기만 하고 다정하게 대해준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동현이가 내심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미안하기도 했다. 동현이에게 이 인연맺기학교라는 공간이 즐거운 공간일까, 매번 혼나고만 가는 공간이 아닐까 싶어서 활동이 끝나고 집 가는 길 마음이 무거운 적도 많았다. 그래서 동현이가 수줍은 목소리로 덧붙인 그 한 마디가 마음에 울림을 남겼다. 그가 좋은 어른으로 잘 커가기를 바라던 선생님들의 진심이 흘러 흘러 조금은 동현이의 마음에도 남았다는 것이 감사했다.
벌써 서울인연맺기학교 어린이들과 함께한 지 1년 반. 그리고 이번 봄학기 열 번의 토요일을 함께했던 선생님들.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문득 나에게 이 공간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참 소중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얼기설기 부족한 점들은 많아도 아름다운 색채로 이어온 우리의 인연과 성장들에 문득 감사해졌다. 최근 종종 듣는 노래인 권나무의 <물>이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너무 무언가를 하려 하지 말아요
그냥 가만히 있는 것도 좋을 텐데
눈물이 고여 있는 정도도 좋아요
물 한잔 건네주는 맘으로
이 밤을 지낼 수 있으
니
문득 들으며 선생님들과 어린이들이 생각이 났다. 나에게 이번 학기 인연맺기학교는 “물 한잔 건네주는 맘”으로 자신의 시간을 내고 마음을 보태어 함께 성장을 만들었던 사람들과 함께해서 감사했던 한 학기였다. 모두모두 수고 많았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며 후기를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