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09 도토리인연맺기학교 ] 우리들의 마지막 수업; 슬프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저한테는 중학교 때부터 줄곧 친해온 3명의 10년 지기 친구들이 있습니다학교가 갈리고 머무는 공간이 달라지면서 지난날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서로의 생일날이면 늦게라도 꼭 만나 축하를 건네고 안부를 나누곤 했습니다. 6월 9일은 그 중 한명의 생일이었고처음으로 그 친구의 생일에그 친구보다 다른 무언가에 더 몰두한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그날은 제가 평캠 자원활동을 처음 함께하던 학기의 마지막 수업 날이었고 이제야 조금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한’ 유빈이와 조금 ’ 안녕을 이야기해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정들었던 인연들과의 헤어짐을 두려워하고관계에서의 변화를 겁내던 평소의 저는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6월 9일의 졸업식이 오기 훨씬 이전부터유빈이와 처음으로 긍정의 언어를 나누던 순간부터아니 어쩌면 도토리 인연맺기 학교를 시작하던 4월 초의 그날부터, ‘마지막을 걱정해왔습니다매주 보며 정든 얼굴을나를 선생님으로 생각해주는 유빈이를 잠시혹은 영 못 보게 되는 것이 아쉬웠고,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은’ 저와 더 친해지지 못한 것만 같은 이기적인 마음에 유빈이와의 만남을 못내 짧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6월 9일은 한성대입구역 근처에 있던 기존의 실내활동 장소가 아닌성신여대입구역의 너른마당에서 진행되었고어린이들과는 나들이 때와 마찬가지로 한성대입구역에서 만나 함께 활동장소로 이동할 예정이었습니다책임교사를 맡았던 마지막 날의 오전은저를 비롯한 책임교사 쌤들과 어린이들에게 줄 감사장울 준비하느라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도토리의 쌤들과 만나기로 한 12시 30분은커녕어린이들과 만나는 1시까지도 한성대입구역에 도착하지 못했고유빈이는 늦게야 헐레벌떡 뛰어온 정신이 없는’ 저와 만나야 했습니다일주일 만에 평캠활동에 온 자신을 평소처럼 짝꿍쌤이 맞이해주지 않아서일까요제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데 급급해 저의 모든 정신을 온전히 유빈이에게 쏟아주지 않았다 느껴서일까요어인 일인지 유빈이는 조금 컨디션이 좋지 않아보였습니다평소보다 무거웠던 가방을 내팽개치거나잡고 있던 제 손을 종종 뿌리친 채 아이 씨를 지르며 지하철 내부를 도망다니곤 했습니다.

  졸업식을 기념하여 사실 동영 쌤과 특별 공연을 준비했었습니다며칠 전부터 만나 작곡 작사도 해보고해당공연을 위해 악기를 준비하느라 전자키보드를 당일 들고 왔었습니다전자키보드를 비롯하여 책임교사 준비물을 살피는 데 급급한 나머지유빈이가 무엇 때문에 짜증이 났는지혹시 무언가 유빈이가 속상할 일이 있지는 않았는지유빈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섬세하게 못 살폈던 것 같습니다한성대입구역에서 성신여대입구역으로 오는단 한 정거장이라는 짧은 시간동안마지막일 유빈이에게 안 돼.’, ‘하지 마.’, ‘여기는 공공장소인데 유빈이가 그러면 내가 너무 힘들어라는 좋지 않은 말들만을 해버린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안 좋았습니다마지막이라 좋게’, ‘유빈이가 행복한 기억으로 도토리 학교를 기억할 수 있게’ 기분 좋은 기억으로 이 시간을 채우고 싶은 제 마음을 유빈이가 몰라주는 것만 같아철없이도마냥 그게 속상했습니다.

  책상 의자 등이 없고 전면이 거울로 되어있어 어린이들로부터 인연맺기 학교의 프로그램들을 진행할 때 요구되는 집중을 끌어내기 적절하지 않으며통으로 된 일체형 공간이라 어린이 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사적 거리를 보장하지 못하던 기존의 활동공간과 달리 너른마당은필요한 도구와 장비들이 나름 갖추어져있고책상과 의자가 있어 한 데 어린이들을 모아 활동을 진행하기에 용이했으며피아노와 짐볼 등 정규 프로그램 이외에 기타 활동이 필요한 어린이들에게도 유용했습니다지난 학기의 활동공간이라 들었었는데아이들은 종종 너른마당에서 했던 지난학기의 활동들을 이야기하며 이 공간이 익숙한 공간임을 드러내보이고는 했습니다평소 프로그램보다는 짝꿍쌤들과 시간을 보냈던 어린이들도 조금은 무언가를 해보고 시도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무연이가 활동에 잘 참여하는 장면을 보기도 했고정인이의 피아노 연주를 듣기도 했으며오랜만에 만나 반갑던 성준이는 기분 좋은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유빈이의 말이나 행동을 볼 때유빈이에게도 분명히 이 공간은 익숙했던 것 같습니다그런데 그 장소의 모든 물품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려는 고집으로 표출되는 듯 했습니다그곳의 스케치북이나 펜들을 가져다 쓰려했고타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립밤을 사용하려하기도 했습니다이를 제재할 때마다 유빈이의 짜증이 심해졌고 쌤 한 분의 핸드폰을 창밖으로 던져 그것을 찾는 과정에서 그 쌤께서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윷놀이를 할 때도전분놀이를 할 때도늘 그랬듯 유빈이는 그림을 그렸고 좀처럼 모두가 함께 하는 활동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유빈이는 늘 그림을 그렸습니다. 6월 9일 그날이라 해서 그림을 그리던 유빈이가 특별했던 것은 아닙니다다만 그저 저 혼자 조바심이 나서 유빈이를 야속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내심 한 번 쯤은 우리가 함께’ 활동하는 모습을 바랐던 것 같습니다그것이 이왕이면 오늘이기를 바랐습니다내가 유빈이를 사실은 더 섬세하고 조심스레 살피고 다가가야 하는데조바심이 난 탓에 저는 유빈이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투박함으로 유빈이를 바라보고는 무작정 제 마음을 유빈이의 마음에 강요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화채 만들 재료를 사러나간 마트에서 유빈이의 짜증과 떼쓰기는 극에 달했습니다저를 비롯한 다른 쌤들을 때리며 무언가 충족되지 않은 답답함을 호소하는 유빈이의 눈빛을 보며 그제야 아차’ 했던 것 같습니다그러고 보면 그간 유빈이와의 모든 순간에서 철없는 저 스스로를 제가 간신히 발견했을 때는유빈이가 제게 눈빛과 행동으로 끊임없이 요구하던, ‘자신의 감정에 대한 심적 공감에 대한 사인을제가 이미 많이 지나쳐버린 후였던 것 같습니다조금의 소란 후 제가 조용히 하자유빈이는 떼를 쓰던 것에서 멈춰 저를 살폈습니다. “손 잡아줘 선생님이라는 제 어리광에 유빈이는 손을 내어줬고 조금은 차분히 너른마당 근처까지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주변의 몇몇 어린이들이 유빈이에게 나름의 방식으로 장난을 걸고그것에 또다시 유빈이의 분노 유발하여그 분노에의 이해와 공감에 대한 유빈이의 요구가 저를 향한 응석으로 발현되던 그 순간저는 유빈아 대체 너를 나를 좋아하는거니 싫어하는 거니?!”라고 유빈이에게 떼 쓰듯 물었습니다사실은 마트에서 유빈이게 제 손을 잡아준 이후 속상했던 마음이 사르르 풀리고 그간의 조바심을 반성했던 터라 조금은 별 무거운 뜻 없이’ 던진 응석이었습니다뜻 밖에 유빈이는전혀 그런 의도의 목소리가 아닌 카랑카랑한 목청으로, “좋아하는거아!”라고 말해주었고그것이 얼마나 감동적이면서도 귀엽고 미소 지어졌는지 모릅니다.

  그 뒤로 실수투성이의 공연이 끝났고그간 함께 했던 영상을 상영했고유빈이에게 준 아이러브 유빈상을 포함하여 한 학기동안 함께하느라 수고한 어린이들에게 감사장을 수여하였습니다책임교사들의 실수로 지우가 상을 못 받았는데그것이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릅니다. ‘참 끝까지 덤벙거리다가 어린이들에게 조금씩의 상처만 주는 것 같다는 생각에 많이 미안하고 속상했던 것 같습니다제 조급함은 유빈이의 감정에 재빨리 공감해주거나 살펴주지도 못했고제 덤벙거림은 어쩌면 막을 수 있었던 실수들을 야기했을지 모를 일이었습니다헤어지는 그 순간 마지막 유빈이의 모습이 제가 건낸 상장을 꼭 안고 있는 모습이라 마음이 더 찡했더랬습니다.

  마지막 나들이 날 유빈이가 참석하지 못해 함께 찍은 졸업사진이 없는 것도 못내 아쉽던 차에유빈이와 제가 함께 나온 사진유빈이가 잘 나온 사진을 하나하나 살펴봤습니다. 4월 초를 시작으로 6월 9일에 이르기까지 꽉 찬 두 달간 꽤 여러 사진에서 우리는 함께했고그 시간만큼 우리는 서로의 눈을 더 자주 마주할 수 있게 되었고서로의 화법을 살피게 되었고서로에게 나름의 방식으로 좋아함을 고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유빈이의 머리끈 어딘가에서 떨어진 분홍색 꽃 모양의 펜던트가 아직 제 지갑 한편에서 따뜻하게 빛나고 있듯졸업식이 끝난 이후 제 마음 속에도 여전히 토요일은 유빈이의 자리로 남아있습니다.

  봄학기 졸업식이 끝나고저의 1학기 학교생활이 끝나갈 6월 중순 무렵 즈음심적으로 많이 지치고 힘든 어느 날이 있었습니다그 때아주 뜬금없이도유빈이가 보고 싶어 많이 놀랐습니다사실 유빈이와 엄청나게 긴’ 시간을 함께한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긴’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며, ‘엄청나게 긴’ 진심들을 공유한 것도 아닌 것 같아그 순간 유빈이가 보고 싶은 제가 스스로도 당황했던 기억에지금 생각하면 조금 민망하고 웃음지어지기도 합니다.

  타인과 관계맺는 것에 대해 이렇게나 짧은 시간에 길고 깊은 고민을 해본 것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자원활동이라는 자각은 사실 활동시간을 적는 시간을 빼면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유빈이를 비롯한 어린이와 만나는 시간은 한 어린이와 제가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의 눈빛을 살피는 관계의 순간이었습니다세상이 재단한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조금은 유빈이가 멋대로 유빈이일 수 있는’ 시간공간을 만들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오래 고민한 것 같습니다다른 한편으로 이 시간은 스스로를 소중히 여길 줄 모르던’ 제가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철없이도 쉽게 상처받는 자신을 마주하며, ‘내가 나를 돌보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유빈이와 다시 만나길 바라며그러나 설령 그것이 불가하다 해도 이 세상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유빈이의 삶이제가 유빈이를 생각하고 좋아하는 만큼조금이라도 더 맑고 밝아지기를 희망합니다.

/ 함수민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