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캠프에서는 2018년부터 연중캠페인 ‘고기없는 월요일’ 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채식하며 생기는 어려움

 

몇 년 전에 저는 약 1년 동안 낮은 단계의 채식생활(소, 돼지, 닭 등의 고기는 먹지 않고 생선, 계란 등은 먹었습니다)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먹는 생활’에서 살짝 국외자의 처지가 되었고 당연히 국외자로서 기존 음식문화에 대한 ‘낯설게 보기’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이 귀한 지면을 빌어 이 낯설게 보기 경험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채식생활을 하면 주변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불편합니다.
당장 집에서부터 그 불편함은 시작됩니다. 저와 옆지기는 맞벌이를 합니다. 그래서 저의 어머니께서 식사준비를 할 때가 잦습니다. 그런데 고기를 특별히 좋아하는 손자와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아들이 함께 먹을 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결국 제육볶음과 고등어구이, 삼계탕과 해물탕, 스팸구이와 두부부침을 함께 준비해야하는 매우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처지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둘째,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빼면 갈만한 음식점이나 술집이 별로 없습니다. 저와 퇴근길에 약주 한 잔 하는 절친이 몇 종류 되지 않는 채식류 술안주에 질려서 결국엔 “오늘 딱 한 번만 치킨에 맥주 마시자.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할께!”라고 읍소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저의 채식생활은 주변 지인들에겐 무척 성가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식 ‘저의 채식생활’에 대해서 주변 지인들에게 가급적 알리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나아가, ‘저의 채식생활’이 생활의 불편함뿐만 아니라 상식도덕정서적인 면에서도 불편을 끼치기도 했나봅니다. ‘고기를 먹지 않으면 건강에 해롭다’, ‘육류소비량이 많을수록 올림픽 메달수도 많아진다.’, ‘우리나라의 1인당 육류소비량은 선진국에 비해 아직 크게 적다.’라는 취지의 상식적이고 실용적인 충고를 자주 들었습니다. ‘육식이 나쁜 것이냐? 육식 즐기는 나는 나쁜 사람이냐?’는 다소 감정적인 항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육식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나 ‘채식생활하게 된 저의 동기’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다만 낮은 단계의 ‘채식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 이야기했을 뿐이었습니다.

정리하면, 저의 채식생활 때문에 저와 주변 사람들 모두 적지 않은 불편거리와 신경쓸거리를 떠안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제가 다른 이에게 ‘유별나고 까탈스러운 사람’,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 ‘도덕적 우월감을 가진 사람’ 취급을 받게 되기도 했습니다.
채식 = 생활상의 불편과 스트레스 + 유별과 까탈 + 도덕적 우월감.
채식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는 채식을 포기하게 하고 육식생활을 강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저도 요즘은 상황에 따라 소돼지닭고기를 먹습니다.

저의 개인경험을 벗어나 사회전반을 반영하는 통계자료를 잠깐 살펴볼까 합니다.

무엇이 육류 소비량을 늘게 하는가?

 

우리나라의 연간 육류(소, 돼지, 닭)전체소비량은 1995년 123만1천 톤에서 2016년 250만3천 톤으로 늘었고, 1인당 연간 소비량은 1995년 27.5kg에서 2016년 49.5kg으로 늘었습니다. 지난

출처 : 농림수산식품부

20년 사이에 육류 소비량이 약 2배로 증가한 것입니다. 물론 육류소비량의 증가 추세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추세입니다. UN은 2050년경에는 연간 육류소비량이 4억 5000만 톤에 이를 것이라 추정합니다. 이는 2000년보다 약 두 배로 증가하는 것입니다.

현대의 공장식 축산을 긍정하는 이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첫째, 인간은 본능적으로 ‘높은 열량’을 가진 육류를 선호한다.
둘째, 전 세계적으로 구축된 공장식 축산 시스템은 육류를 값싸게 공급 할 수 있게 되었다.
즉, 공장식 축산은 인류의 ‘육류’에 대한 욕구를 값싸게 충족할 수 있는 긍정적인 시스템이라고 주장합니다.

육류생산소비량의 지속인 증가, 육류산업의 성장 현상의 가려진 뒷면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현재 이미 가축을 먹일 사료작물과 목초, 가축을 키우는 데 들어가는 땅이 세계 농지의 80%를 차지합니다. 무엇보다 전세계인구 76억 명을 위하여 매년 닭 600억 마리, 돼지 14억 마리, 소 3억 마리 등 650억 마리 이상이 도축되고 있습니다.

 

 

둘째, 전세계적으로 육류생산공급체계몇몇 기업에 장악되었고, 막대한 이익이 그 기업들로 쓸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JBS, 브라질푸드, 타이슨푸드, 카길, 스미스필드 등의 기업들인데, JBS는 2014년 한해의 순이익이 약 6천328억 원이었고, 타이슨푸드는 2016년 1/4분기 세 달 동안의 수익만 약 5천210억 원이었습니다.

출처 : FAO

셋째, 육류생산유통기업은 이해관계자들을 착취하고 수탈함으로써, 자신이 부담해야할 공공보건-환경비용을 사회에 전가함으로써 그토록 막대한 수익을 얻는 것입니다. 이 수익들은 위탁계약생산방식에 따라 실제로 가축을 키우는 군소위탁계약자들에겐 단가후려치기, 축산업 노동자들에겐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 강요라는 수탈과 착취를 통해서 창출된 것입니다. 경제적 효율성을 극대화한 공장식 밀집사육 역시 그 뒷면에는, 돼지를 가두는 임신틀, 산란닭을 가두는 배터리케이지 등 잔인한 가축사육환경, 지나친 항생제 사용, 배설물과 폐기물 문제 등이 있습니다. 동물복지권의 침해, 항생제 남용에 따른 공공보건 위험성 증가, 배설물과 폐기물에 따른 토양수질대기오염 등이 사회에 전가되고 있습니다.

넷째, 독점육류기업들은 정치후원금, 학술지원금, 광고비 등을 통해서 정치인, 학자, 언론인을 포섭하고, 각종 무역협정, 조약, 국내법 제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한 농산업복합체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독재정권과 결탁해서 거대한 면적의 숲을 가축사육용 목초지로 바꿔버리고, 미국에서 1950년대부터 제기된 항생제 사용 중단 요구를 반세기 이상 무력화시켜왔습니다. 이들이 가진 힘을 어림해볼 수 있는 작은 사례들입니다.

값싼 상품이 드리우는 어두운 면

동전에 견주어서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동전의 앞면은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세계적으로 육류소비량이 늘어나는 현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육류, 동물성단백질에 대한 인간의 선천적 선호와 열망’, ‘위탁생산, 공장식 밀집사육에 의한 값싼 육류의 대량공급’도 동전의 앞면에 새겨진 내용입니다.

한편 ▲소수 독점기업에 장악된 육류생산-유통시스템과 그들의 엄청난 수익 ▲거대 농산업복합체로의 변모와 민주주의 파괴 ▲위탁생산방식에 종속당한 중소육류생산기업과 업자들 ▲축산업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 ▲공장식 밀집사육방식에 따른 공공보건 위험, 동물복지권 침해, 환경파괴 ▲육류 식품 소비를 늘리려는 엄청난 마케팅 등이 동전의 뒷면의 내용입니다.

동전의 뒷면은 한편으론 누군가에 의해서 일부러 숨겨져 있기도 하고, 한편으론 뒤집어보는 수고스러움 때문에 잘 보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혹시 보게 되더라도 무척 낯설게 보이겠지요. 이 낯설게 보기를 통해서 익숙해 보였고, 당연해 보였던 것에 의문을 가져볼 수도 있습니다. 저의 짧은 채식생활 경험, 육류산업에 대한 전세계적 추세의 한 단면을 통해서 “어쩌면 우리가 ‘과도하게 고기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을 가지신다면, 감사하게도 이 글을 쓴 저의 바람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치며

 

좀 더 큰 바람을 덧붙입니다. ‘과도하게 고기 권하는 사회, 육식제국’을 거부하고 대안운동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든, 인류의 먹거리 다양성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든, 지구생태계의 보존을 위해서든, 동물복지의 향상을 위해서든, 먹거리산업에서 독점자본의 횡포를 통제하기 위해서든, 또는 다른 각자의 이유에 의해서든 ‘육류소비를 줄이자’는 운동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음식점 메뉴판과 뷔페식당 음식배열에서 채식요리가 먼저 배치되도록 압력을 가하고, 동물복지 인증표시제와 무항생제 인증표시제가 도입되도록 ‘착한 소비’ 운동을 할 수 있고, 반대로 공장식의 밀집생산육류에 대한 불매운동도 가능합니다. 식품산업에서의 독점금지법, 가축 사육과 사료작물 재배에 대한 ‘환경영향세’, 포화지방 함유 식품에 대한 ‘포화지방세’를 제정하기 위한 정치캠페인도 펼칠 수 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을 것이고, 힘 모아 열심히 하면 될 일이라 믿습니다.

“육류 과소비에 대한 대응과 식습관의 변화가 매우 필요하다.” 유럽과학자문위원회의 어조는 너무나 무미건조하고 담담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 경고는 더 처절합니다. 우리 평화캠프의 ‘고기 없는 월요일(Meat Free Monday)’ 캠페인도 이런 생각바탕 위에 서 있습니다.

글. 평화캠프 코디네이터 박창우

 

** 위글은 평화캠프 2018년 여름호 소식지(55호)에 게제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