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인연맺기학교] 4월 28일, 가장 큰 생일선물

 

2018년 4월 28일, 도토리 인연맺기 학교의 어린이들과 설레고 떨리던 첫 만남 이후 벌써 근 한 달이 흐른 오늘, 우리는 이촌역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나들이를 떠났습니다. 오늘은 제게 조금 더 특별했습니다. 서로 다른 여러 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지기에는 자그마했던 실내공간으로부터 벗어나는 첫 야외활동날이자, 제가 처음으로 책임교사가 되어 쌤들의 도움을 받으며 프로그램들을 함께 진행해본 날이자, 제 생일이었거든요! 아이들과 만나는 결집 장소에서 쌤들의 생일 축하를 받으며, 조금은 긴장도 하며, 그래도 조금은 더 벅찬 마음으로 나들이를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제 짝꿍어린이는 유빈이입니다. 유빈이는 그림 그리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미술 활동’을 즐기기 보다는, 하얀 빈 공간을 자신의 생각과 그림으로 그려 매우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림놀이’가 없을 야외활동을 유빈이가 즐거워해줄까 하는 고민을 했었습니다. 야외활동을 한다는 이야기에 ‘들떠있었다’던 유빈이를 만났을 때 모든 걱정은 사라졌습니다.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보였고, 오늘따라 제 눈을 더 잘 마주쳐줬고, 오늘따라 저를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말로 우리의 만남을 시작하지 않았거든요!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지만, 때론 그것이 공격적인 고집으로 드러나 보일 때가 있었지요. 여성 쌤들과의 관계보다 남성의 어린이들과의 관계에서 유독 경계심을 드러내던, 그리고 자신만의 생각과 공간이 ‘안전히’ 지켜져야 스스로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우리 유빈이에게, 어쩌면 그동안의, 독립된 공간이 하나 없는 작은 실내 활동공간은 ‘답답하고 불안한’ 공간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야외활동 속에서의 유빈이는 더 긍정적이고, 더 자기표현을 잘하고, 더 웃고, 더 많은 긍정의 말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도착하자마자, 조금 늦는 친구들을 기다리면서 주변을 돌아보고 나무와 숲을 만끽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유빈이는 ‘나무’보다 ‘나무에 오르는 것’을 좋아한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개구리 버거’를 만들던 지난 시간, ‘나는 치즈가 좋아’라는 말 이후로 ‘~가 좋다’라는, 희망차고 사랑스러운 언어를 다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민들레 씨앗을 불어 날린다던지, 비눗방울 놀이에 스스로 참여한다던지, 보물찾기에 참여한다던지 등 그림을 그리는 것 이외의 활동에서 유빈이가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해보는’ 모습을 그날 정말 많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제가 딸기를 조금의 설탕과 함께 갈아 주스를 만들어갔었는데, 유빈이가 그것을 아주 잘 마시며 ‘딸기가 좋아’라고 해주었습니다. 얼마나 뭉클했는데요! 유빈아 백만개 갈아줄수있어!

유빈이는 평소에 정우라는 친구와 (제가 대처하기에) 가장 ‘어려운’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친한 것’ 같으면서도, 서로 어울리는 방식이 다소 과격하거나 폭력적인 경우가 있어서 우려가 되기도 했고, 반가움을 담아 유빈이를 ‘놀리는’ 정우와 그런 정우에 대해 ‘과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 유빈이 사이에서 그동안 제가 취했던 태도는 ‘떼어놓기’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이번 나들이에서 유빈이가 정우를 때려 정우가 눈물을 보인 일이 있었습니다. 정우의 ‘메롱’에 대해 유빈이가 손을 사용해버렸거든요. 그런데 정우가 눈물을 보이자 유빈이 얼굴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돌았습니다. 여러 쌤들과의 중재 끝에 유빈이는 정우에게 ‘사과’했습니다. 유빈이가 상황을 읽어낼 줄 알고 ‘당황’함을 내보이며 ‘상대를 염려’할 수 있는, 그리고 빠르게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 점을 많이 칭찬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 약 3시 경부터 4시 10분정도 까지 어린이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 때 처음으로 유빈이와 정우의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우가 카메라로 유빈이를 찍으려하면 유빈이는 기꺼이 포즈를 취해주기도 하였습니다. 때로 투닥거리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유빈이와 정우의 나름의 관계 안에서 서로가 서로와 노는 방식으로 합의된 투닥거림’인 것 같아 굳이 말리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유빈이에게 가장 큰 생일선물을 받아버렸습니다. 유빈이가 처음으로 제게 ‘너 좋아해’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이죠. 이 날 이후 이 얘기를 방방곡곡 이야기하며 얼마나 자랑하고 다녔는지 모르더랬습니다.

유빈이는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기에 충분한 공간과 자유가 있다면, 기꺼이 주체적이고 맑고 밝고 긍정적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정말정말 많이 느낄 수 있었던 나들이였습니다. 그동안 유빈이에게 무작정 ‘사랑스럽지만 조금은 예민한 친구’정도의 수식어를 감히 붙여왔던 스스로를 많이 반성했습니다. 유빈이가 유빈이 나름의 긍정의 말들을 기꺼이 할 수 있을 정도로 저라는 존재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나아가 도토리 인연맺기 학교가 유빈이를 비롯한 어린이들에게, 비록 가혹한 세상 속에서 이상을 꿈꾸는 자그마한 온실에 불과할지라도, 조금은 안전하고 편안하고 자신의 모습 그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는, 스스로를 잃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미숙한 저와 함께 책임교사를 하셨던 쌤들께 정말 감사했단 말씀 드리고싶구요, 첫 야외활동이었는데 모든 쌤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자원활동가 함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