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 하늘달리기] 4월29일, 하늘을 담는 그릇

 

유난히 바람이 달고 시원했던 4월의 끄트머리에 하늘달리기 나들이를 다녀왔다. 날도 선선하고 하늘도 푸르러서 집에서 나설 때부터 마음이 설렜다. 본격적으로 나들이를 출발하기 전에 은평 민중의 집 랄랄라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자원활동가들과 활동참여자들, 보호자들이 처음 만나고 인사하는 자리였다. 오랜만에 만난 활동참여자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처음 만나는 자원활동가들과도 인사를 나누니 어느새 점심이 다되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이 날의 내 짝꿍은 아주 옛날 바람개비 인연맺기학교 때부터 평화캠프와 인연을 맺어온 변창연씨였다. 창연씨는 어서 나들이를 가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려 안달이었다. 신난 창연씨의 마음을 따라 나 역시 붕 뜬 마음을 가지고 오늘의 나들이 장소인 하늘공원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점심도시락을 먹고 하늘공원의 초입길에 도착했다. 하늘 공원에 올라가는 길에 금빛 꽃들이 흐드러져 있었다. 흐드러진 노란 꽃들을 보고있자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창연씨도 꽃을 굉장히 좋아해서 지나치지 못하고 계속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꽃구경도 하고 291개의 계단도 세가면서 올라가니 어느새 꼭대기에 도착했다! 올라서니 “하늘정원”이라는 이름이 왜 지어졌는지 알 것 같았다. 꼭대기에서 마주한 하늘은 금방이라도 물들 듯 넓고 푸르렀다. 하늘을 담는 그릇에 들어가서 하늘을 바라보니 마음까지도 깨끗해지는 것 같았다.

풍경만큼 좋았던 것은 함께했던 사람이었다. 나와 하루를 같이 보낸 창연씨는 세상 순하고 잘 웃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함께하는 친구들을 너무 좋아하고 작은 즐거움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었다. 가는 길의 지하철, 길가에 피었던 민들레꽃, 좋아하는 것들, 좋아하는 색깔, 연둣빛 나무들과 붉은 철쭉, 한강에 유유히 떠다니던 배, 제일 좋아하는 친구들…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들로 이어졌다. 그 대화가, 순하고 따뜻한 목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나는 종종 사진을 찍느라 뒤처졌는데 창연씨는 곁에서 내가 없어질 때마다 늘 돌아보며 “선생님!” 이라고 부르며 기다려주었다. 내가 “가요!“ 라고 이야기하면서 곁에 서면 그제야 발걸음을 움직여주었다. 나 뿐만 아니라, 함께했던 친구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계속 돌아보고 찾았다. 특히 승원이 형을 좋아했는데, 승원이형이 눈에 안 보이면 기다렸다가 함께 걸어갔다. 함께 대화를 나누거나 노는 것이 아닐 때에도. 짧은 시간이지만 창연씨와 시간을 보내며 그가 얼마나 인내심이 많고 주변을 돌아보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다.

나들이가 끝나고, 우리는 응암역으로 다시 돌아오는 지하철을 탔다. 창연씨는 올 봄부터 보호자분과 함께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버스정류장에서 혼자 버스를 타고 집에 간다고 했다. 혼자 버스를 이용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그는 돌아오는 지하철에서도 버스정류장 위치와 타야 할 버스를 계속 외웠다. 조금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응암역에 도착한 후, 창연씨를 버스 정류장에 바래다주고 나서 그가 혼자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먼발치서 지켜보았다. 그가 혹시 버스를 잘못 탈까, 싶은 노파심 때문이라기보다 낯선 공간에서 긴장한 그의 기다림을 멀리서나마 함께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루 종일 나를 기다려주었던, 친구들을 기다려주었던 그를 먼발치서 지켜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주변을 챙기고 타인의 속도를 배려하는 그 마음만큼만, 딱 그 마음만큼만 세상도 그의 삶을 기다려주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의 속도에 맞출 수 있으면 좋을텐데. 버스가 와도 신중히 확인하느라 타지 못한 그와, 망설이는 그를 두고 쌩하니 달려 나가는 버스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이 아직 그의 마음을 쫓아가진 못하고 있다는 생각. 그를 지나치는 버스와 어쩔 줄 몰라하는 창연씨를 보면서 한켠으로는 마음이 씁쓸했다.

뒤처지는 이를 돌아보고 기다리는 묵묵함. 올 봄 첫 하늘달리기 나들이는 그 묵묵함에 알게 모르게 위로받고 배웠던 시간들이었다. 빨리 나아가는 것보다, 내 곁의 사람과 발 맞춰 걷는 것의 기쁨을 새삼 배웠던 시간들이었다. 세상이 그를 닮아가면 좋겠다. 뒤처지는 이를 기다리는 인내심을, 그 느린 속도를 배웠으면 좋겠다.

하늘공원의 한 가운데에는 “하늘을 담는 그릇”이 있었는데, 그 그릇이 참 함께했던 짝꿍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파란 하늘을 가득 담고 돌아왔던 나들이었다.

 

/자원활동가 양다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