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6 도토리인연맺기학교] 그 순간을 즐기길!

2019년 4월 6일, 2019년 봄 학기 도토리 인연맺기학교가 시작했다. 희한하게도 지난 학기에 비해 긴장은 별로 하지 않았다. 이제 어느 정도 짝꿍쌤이 되는 것에 익숙해진 것, 부담을 던 것이라면 좋은 거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나태해진 것이나 열정이 식은 것일 수도 있어 복잡한 마음이었다. 나는 책임교사였고, 종로3가에서 다른 책임교사 쌤들과 만나 활동장소인 성북50플러스센터로 갔다. 일찍 오신 다른 쌤들도 계셔서 같이 쌤들과 나비를 오리거나, 꽃잎을 그리는 등 준비물을 준비했다. 타인을 ‘환대’할 것을 다짐했지만, 첫 날인데다 책임교사이니 나도 모르게 신경이 날카로웠던 것 같기도 하고, 텐션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러면서도 쌤들이 계시니까 오늘 활동이 잘 될 거라고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도 같다.

도착해서 책임교사 파일을 열자, 짝꿍 매칭을 알 수 있었다. 미리 짝꿍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당일에 서프라이즈로 알게 되는 것도 소소한 재미인 것 같다. 난 무연이 짝꿍이었다. 하지만 보호자님의 착오로 무연이가 결석하면서, 몸이 안 좋으셨던 수민쌤 대신 지난 학기와 미리봄 캠프 짝꿍이었던 유빈이와 함께 활동하였다. 유빈이는 올블랙 패션으로 나타났다. 쌤들도 ‘도토리의 패셔니스타’라고 칭찬해주셨다. 나중에 들어보니 치마가 입고 싶어서 치마를 입고 왔다는 것 같았다. 약간은 피곤해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웃기도 하고 산책 나갔을 때는 뛰기도 해서 괜찮았던 것 같다.

첫 번째 프로그램은 종이컵과 실로 전화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유빈이는 이미 그림 그리기에 열중해 있었다. 포스터 종이가 매끈매끈하다보니 원하는 색을 나타내기 위해 열심히 색칠했고, 가루가 얼굴에 묻기도 했다. 누리쌤은 ‘사람이 아닌 건물을 그리는 걸 본 건 처음이다.’라고 하셨다. 누리쌤은 참말로 세심하게 반응하신다. 뿐만 아니라, 유빈이는 종이컵의 바닥을 뜯어서 치마처럼 만들었다. 유빈이는 치마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그동안 도토리하면서 치마를 입고 온 적은 없는데, 다음 주에 한 번 입고 와야겠다. 다음 주부턴 짝꿍이 아니니까 치마에라도 관심을 갖고 와줬으면 좋겠다. 비록 치마를 입은 쌤들이 많아도 아는 척을 한 건 아니지만… 유빈이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두 번째 프로그램은 꽃잎을 오려붙이는 것이었다. 이때쯤 재성이가 와서 가지고 있던 빼빼로를 나눠줬다. 유빈이가 남자 어린이를 싫어하는 건지, 경계하는 건지, 두려운 건지,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만만한 건지, 보호반응이자 반사반응인건지 정확한 감정과 이유는 복합적일 것이고, 모르겠지만, 어쨌든 별로 안 좋아한다고 알고 있다. 활동 중에도 ‘남자 친구는 바보 같아’라고 하기도 했고, 남자애가 있으면 가까이 가지 않기도 하고, 가만히 있는 남자 어린이(주로 친분이 있는?)를 가방으로 때리기도 했다. 그래도 빼빼로가 싫어하는 감정을 이긴 건지, ‘두 개 주세요.’라고 했고, 받고 나서도 더 달라고 했지만 ‘재성이 꺼니까 재성이 먹게 하자’고 하니 뺏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꽃을 발표했다. 유빈이는 색연필을 조각조각 부러뜨려서 사람들에게 던졌다. 아마 이게 시그널이었던 걸까. 유빈이는 ‘남자친구 때려도 돼?’라고 물을 정도로 하면 안 되는 행동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에게 색연필을 던지면 안 돼’라고 하니 하지 않았다. 어쨌든 친구들이 산책하러 나가고, 누리쌤도 권유하니 옷도 챙겨 입고 우리도 산책을 나갔다. 누리쌤께는 배울 점이 참 많은 것 같다. 누리쌤은 쌤들 사이에서도 고민을 상담하거나 그냥 대화를 하기에도 참 좋으신 분이다. 나도 누리쌤과 대화하니 기분이 절로 좋아졌고, 유빈이도 누리쌤과 이야기하는 게 편해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우선 누리쌤의 말투를 벤치마킹해야 할 것 같다. 리액션도 잘 해야겠다. 유빈이가 누리쌤의 ‘갈까요~?’를 따라했다. ‘가자’같은 말보단 ‘갈까요?’처럼 대화하듯이, 권유하듯이, 부드럽게, 끝을 올려 말하는 걸 연습해야겠다.

산책에서 돌아와서는 주로 복도 소파에 있었다. 가끔 들어가려고 하긴 했지만 시끄럽고, 장소는 좁고 남자어린이들이 너무 많았다. 유빈이도 심심하고 집에 가고 싶어 했다. 편의점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치즈와 체리맛 더블딥 빼빼로 앞에서 떠나지 못하였다. 아직 우리의 관계는 먹고 싶은 것을 사서 먹을 수 있는 관계는 아니다. 그래도 만약 하늘 달리기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점심, 아니면 간식을 싸오니까 용돈으로 사서 가져와서 나눠먹고… 이렇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난 유빈이가 누군가를 때릴 때 너무 별일이 아닌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기도 하다. 좋게 말하면, 흥분하지 않는 것이지만, 상대방의 반응이 약해도 그러면 안 되는 것인데 나라도 단호하게 해야 하는 입장 아닐까. 항상 도토리를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은 끊이지 않는다. 시간 지나고도 계속 되새겨보기도 하고, 다른 대처 방식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예를 들면, 누군가를 때릴 것 같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친구를 때리지 않을 거지?’라고 해야 되나? 너무 조심하는 것 아닌가? 부정적 기대를 가지고 말하는 것 아닐까? ‘예방’에 치우친 것 아닌가? 둘 사이에 끼어들어 분리시키는 건 ‘위험하니까 격리시켜야한다’는 주장과 같아지는 거 아닌가? 이건 너무 멀리 갔나? 그렇다고 때리고 나서 ‘~하면 안 돼’라는 식으로 은근슬쩍, 별 말 없이 지나감으로써 반복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세게 말하기엔 두려움도 있다. ‘들은 척도 안 할까봐’의 두려움, ‘유빈이가 흥분할까봐’의 두려움, ‘쌤들로부터 비판을 받을까봐’의 두려움… 어쩌면 인간적인 두려움들이다. 나는 설령 원치 않더라도 거절을 잘 못하는 성향이다. 오히려 어느 정도 사이가 되었다면 거절할 수 있겠지만, 또 친해지니 만만하게 여기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 소극적 거절도 어려운데, 단호하게 굴기란 참 어렵다. 그래도 방기할 순 없을 거란 거 안다.

이번에 좀 아는 친구들, 어쩌면 좀 만만하다 싶은 친구들에게 그런 태도를 보여줬다. ‘이유 없이’ ‘때렸다’는 표현이 쓰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유가 있었는데 몰랐던 거면 어쩌려고. ‘때린다’라는 표현은 괜찮은 걸까? 편향된 표현인가? 사실 상대 어린이의 짝꿍쌤이 상대 어린이에게 맞을 만한 잘못한일이 있는지 물어보자 이 상황을 더 이상 무시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친구들도 조용히 넘어가는 편이기도 하고, 유빈이도 그걸 알고, 내가 화내지 않을 걸 아나보다. 만약 유빈이가 상대방에게 맞는다면 상대방은 더 혼날 테니까. ‘왜’를 궁금해 해도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볼 수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게 탓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까? 모르겠다. 여기다 이렇게 쓴 게 적절할까? 다른 사람도 볼 텐데. 이건 공유되어야 하는 사안인가? 내가 다른 친구들 사이의 일들을 평가회의가 돼서야 알 수 있던 것처럼 다른 쌤들도 평가회의가 돼서야 유빈이가 어떻게 보냈는지를 알 수 있다. 쌤들이 관심이 있는지, 궁금해 하는지도 모르겠다. 난 지금 유빈이를 ‘아무 이유 없이 때리는 사람’으로 악마화시키고 있나? 모르겠다. ‘아이들은 영악하다’는 말은 괜찮을까? 모르겠다.

때리는 이유를 안다고 해결할 수 있는 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때리면 왜 그러냐고 물을 수라도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때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 유빈이는 ‘끝났어?’라고 물으며 끝나기를 기다렸다. 가방을 좌우로 날리다가 후에는 자기 머리를 때렸다. ‘왜’라고 물으니 그만두고, 정말로 활동이 끝나자 흐지부지되기도 했다. 잘한 걸까? 정말 차분히 살펴보도록 환기시킨 것일 수도 있고, 이건 받아들여질 수 없으니 그만두라고 강요한 걸 수도 있다. 유빈이가 정말 분에 차서 때리는 것과 슬쩍 때리는 것의 강도 차이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솔직히 내가 맞으면 별로 아프지도 않아서 맞을 만하다. 아픈 척해야 안 때릴지, 하나도 안 아프니 소용없다고 해야 안 때릴지 모르겠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자 답도 안 나온다.정말 큰일로 여겨지면 다를 텐데. 실제로 별일이 아닌데 괜히 혼자 심각한 건지 잘 모르겠다. 집단에서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스트레스 상황이 끝난 후 이를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황 안에서는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까? 예를 들면, 보기 싫은 사람을 봐야 한다면? 도망칠 수만 있다면 도망칠 것이다. 깔끔하게 화해하고 사이가 좋아지는 게 가장 건강하겠지만, 가장 건강한 방법들은 참 어렵다.

말만 바뀐다고 상황이 바뀌는 게 아니다. 그래서 말투가 중요하다. 정말 상대방을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근데 그게 어떻게 표현되어야만 하는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일종의 연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려면 그게 노력해서, 방법론적으로 접근해야 도달할 수 있는 영역 같다. 그 밑바닥에는 현재의 모습이 완전하지 않다는 불안감이 있다. 정답은 없지만 있는 것 같은 모순에 빠진다. 나쁜 건 아니다. 정답은 없어도 정답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해야하니까. 근데 제대로 가고 있는 가 확인할 수가 없다. 마치 서술형 문제 같다. 채점을 위한 근거, 가이드라인은 있다. 억압과 방치의 스펙트럼에서 적당히 해야 하는데, ‘적당히’는 너무 어렵다. 각종 설문지에서 자신의 대답을 1~5까지, ‘매우 그렇지 않다’와 ‘매우 그렇다’ 사이의 수치를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다. 나의 강점은 무엇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성실한’, ‘끈기 있는’ 등의 정해져 있는 텍스트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도 많은 생각이 따라오는 일이다. 일종의 ‘답정너’같기도 하다. 좋다고 하긴 좋지도 않은, 싫다고 하긴 싫지도 않은, 때론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어중간함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중간함은 사실 없는 걸까? 어중간함을 걸러내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너무 생각이 많았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다.” 다음 주는 나들이이다. 날씨 좋고 햇빛 좋은 날에 새로운 짝꿍과도 함께 할 것이다. 텐션을 꼭 올리고 반갑게 인사해야겠다. 행복이 자연스럽게 넘쳐흘러 짝꿍에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좋은 짝꿍이 될 수 있게 노력하자. 그 순간을 즐기길.

/ 유지은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