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8 바람개비인연맺기학교] 너와 나만 아는 그 변화를 성장이라고 불러도 될까
한학기동안 진행했던 인연맺기 학교가 끝났다..!
나랑 준서는 죽이 잘 맞는 짝꿍이었다. 둘 다 뛰어놀거나 다른 친구들이랑 활발하게 어울리기 보다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서로에게 집중하는 것을 좋아하고, 멍때리는 것을 좋아하고, 가만히 바람을 느끼는 것을 좋아하는 점이 닮았다. 그래서 인연맺기 학교를 했던 지난날들을 생각해보면 항상 친구들 무리에서 벗어나 그늘진 곳에 가서 손장난을 하며 씨엠송을 부르던 순간들이 많이 생각난다.
준서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은 씨엠송이다. 준서가 태어나기도 전의 씨엠송부터 최근에 나온 씨엠송까지 섭렵했다. 나는 텔레비전을 잘 안봐서…… 준서가 원하는 씨엠송 메들리를 매번 수업 전마다 익혀가야 했다.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씨엠송음만 대충 외워간다고 생각하면 아주 큰 오산.. 가사까와 제품명까지 정확하게 외워야 한다.) 게다가 준서가 “또 뭐가 있지?” 하면 즉각즉각 다른 씨엠송을 불러주어야 하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씨엠송이 나올 정도로.. 학습의 내면화를 해야 한다.. 매주 새로운 씨엠송을 한아름 알아와서 나에게 알려줄 때마다 너무 귀여우면서도 머리가 아파왔다. 그리고 중요한 건 준서가 좋아하는 것이 씨엠송뿐만이 아니고, 파워레인저, 행성, 곤충, 동물.. 다양해서.. 씨엠송과 다른 좋아하는 것을 연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진짜 다른 것과 연결된 씨엠송을 생각해야 할 때 정말 머리가 깨져버릴 것 같다. 예를들어서 새우깡 씨엠송 광고는 빨간색과 관련이 있으니까 파워레인저 레드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씨엠송에 행성의 이름을 넣어서 불러야 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서.. “농심 태양계” “여름이니까~ 아이스 수성!” 이런 식으로!!!!!!!!!!
또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를 하면, 보통 저렇게 파워레인저를 그리거나 만드는데.. 레드는 새우깡, 옐로우는 산와머니, 핑크는 페브리즈, 그린은 우루사, 블루는 하우젠 에어컨, 퍼플은 뭐였지.. 기억이 안난다. 하여튼 이런식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준서가 가르키는 파워레인저에 따라서 다른 씨엠송을 불러주어야 한다. 계속 하다보면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사고회로가 정지가 되어서 말문이 막힐 때가 있다. 그럴 때 준서는 조금 아쉬워 하지만 그래도 다시 머리가 가동되어서 노래를 불러주면 하얗게 웃는다.
준서를 보지 않는 주중에도 나는 종종 책을 읽다가, 글을 쓰다가, 수업을 듣다가, 일을 하다가 준서를 떠올린다. 종이 인형 같은 팔랑팔랑 거리는 춤사위가 떠오르고. 옆에서 재잘재잘 씨엠송을 부르는 목소리가 떠오르고. 간식을 주물주물 거리는 작은 손이 떠오른다. 그러면 배시시 웃게 된다. 준서는 아마 나를 많이 떠올리지 않겠지만, 나랑 같이 보낸 작은 시간들이 알게모르게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준서 주변 사람들 중에서 가장 씨엠송을 많이 알고, 가장 많이 불러주는 사람이면 좋겠다. (ㅋㅋ이상한 욕심)
종이인형처럼 팔랑팔랑 거리는 준서가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좋아해주고 나에게 잘 기댈 수 있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처음에는 준서가 나를 좋아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준서는 나에게 나는 준서에게 서로 따뜻한 마음을 주고 받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이름도 불러주고, 내 손도 먼저 잡아주고, 친구들의 이름도 알아가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이야기 하고.. 어떤 변화라고는 단정지어 말 할 수 없지만 준서와 나만 아는 그 변화를 성장이라고 부르면 되는 걸까?
준서가 나에게 몸을 기대어 누우면 나는 머리카락을 살금살금 만진다.
잠시 쉬었다가 또 만나자! 여름에.
/ 자원활동가 홍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