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 도토리인연맺기학교] 무지개처럼, 우리들의 남은 도토리활동도 찬란하고 행복할거야

 활동을 하다보면 아이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만큼이나, ‘와 나는 정말 이러이러한 사람이었구나’ 하는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 사실 살아가면서 좀처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되돌아볼 기회가 많지 않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때론 단점이 되고 마는 나의 습관이나 성격이나 행동에 주목하게 된다.

  나는 성미가 참 급한 사람인 것 같다. 나름 완벽주의도 있는 것 같다. 조금 기다리면 되련만, 기존의 계획과 조금 달라도 되련만, 내가 생각했던 그림이 나오지 않아도 되련만. 그게 그렇게 때로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광영이의 손과 계속 마주 닿아 있어야 하는 내 손은 이따금 광영이의 손을 놓고 늘 분주하기만 했던 것 같다. 난 뭘 챙기고 싶었던 걸까. 뭘 완성시키고 싶었던 것일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래도 내가 잡는 손을 잘 잡아주고, 혼자 잘 놀다가 내 옆으로 돌아와 주고, 성신여대역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미주알고주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광영이에게 참 고맙다.

  2주차 도토리는 올림픽 공원으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와. 올림픽공원. 정말 서울에 살던 경기도에 살던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먼- 곳이었다. 나는 책임교사였다. 팀리더가 도토리 전반의 ‘반장’ 역할을 하는 시스템으로 인연맺기 학교의 운영체계가 바뀐 이후로, 책임교사가 당주의 프로그램 전반을 기획해야 했기에, 지지난주부터 장장 두 번에 걸쳐 올림픽공원의 답사를 진행했었다. 광활한 잔디 동산 위 한 그루의 아름드리 나무가 서 있는 ‘나홀로 나무’로 올림픽 공원은 유명하다. 청춘 드라마에서 풋풋한 장면이 등장 할 때 배경 삼기 더할나위 없는 곳이다.

  답사 내 괜시리 설렜던 것 같다. 나도 이번 답사들을 계기로 그 곳을 처음 가보았는데, 아닌 척 했지만, 사실 걱정이 컸다. 나만해도 지하철을 오래 타는 것에 조금 겁을 내는 편인데다, 책임교사지만 지하철 이동 중 ‘앞장’을 설 수 없는 개인적인 사정도 맘에 걸렸고, 더욱이 도토리의 기존 활동공간과 올림픽 공원 간 거리가 멀어 공원 내 실질적인 활동 시간이 짧을 것이라는 점, 휠체어를 이용하는 아이와 보행이 편하지 않은 아이가 함께 활동하는 도토리의 특성 상 ‘적합’하지 않은 공간일 수 있다는 점, 토요일 당일 이 곳에서 여러 행사가 겹쳐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점 모두가 우려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교사 쌤들과 더불어 ‘도전’의 마음으로 장소를 선택했다. 사실 사람이 좀 많으면 어떤가 싶었다. 사람이 붐비지 않는 곳을 선택하는 것은 사실 ‘자원활동가’에게 편한 방식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동량이 조금 많은 곳도 한 번 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적북적한 것도 나름이 ‘매력’이 되는 것이 비장애인의 특권인 것만 같았다. 이 것 저 것 너무 따지기만 하지 말고 한 번 ‘잘 짜보자!’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잘 구성하고 꼼꼼이 구성하는 것이 자원활동가의 몫이 되어야지, 마냥 재고 따지는 것이 우리들의 ‘어쩔 수 없다’는 말 아래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하. 쓰고 보니 너무 진지해졌는데, 각설하고, 정말 ‘즐거울 수 있는 길’을 최대한 모색해서 도토리가 나들이로 갈 수 있는 또 하나의 곳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답사를 거듭하며, 산책 루트와 프로그램도 거듭 변경했다. 넓디넓은 공원 안에서 명물인 나홀로 나무는 하필 공원의 저- 뒤에 위치해 있었다. 나홀로 나무를 볼 수 있으면서도, 나름의 프로그램도 진행하면서도, 베리어프리인 비언덕지대를 고르고 골라 나름의  프로그램 기획을 마무리 했다. 크 활동지까지 마무리하고 나니 어찌나 뿌듯하던지.

  그런데 이런 ‘뿌듯함’에 취해있으면 안 되는 것 같다. 하하. 종종 잊곤 하는데, 우리의 활동은 많은 돌발상황들과 함께한다. 먼 곳, 어려운 곳, 붐비는 곳을 피해왔던 까닭이 새로운 것에 대한 마냥의 ‘주저함’보다는 ‘최소한의 보장된 안전과 즐거움’을 위한 것이지 않았을까. 실제로 짜왔던 산책도, 나홀로 나무 앞에서의 단체사진도 모두 실패했다. 그래도 우리는 웃었고, 즐거웠고, 뜻밖의 무지개를 바라보며 신이 났다.

 도토리 가을학기에서 광영이와 짝이 되었다. 광영이는 낯을 가리는 것도 같은데, 이따금 서슴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을 보면 마냥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면모가 많다. 미술에 관심이 있는 것 같고, ‘잘 하는 것’에 대한 욕심도 있는 것 같다. 때론 그 ‘잘 함’이라는 것이 ‘비교’에서 오는 것 같아 우려가 되기도 하다. ‘누군가’ 보다 잘해야, 특정 공간 안에서 ‘제일’ 잘해야, 같은 조건들은 사실 사람을 외롭게 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도 이러한 틀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서, 광영이를 보고 있자면, 늘 조급하고 불만족스러워했던 나의 과거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나들이나 산책 때 손을 잡고 걸어 갈 때도, 누군가보다 더 빨리 걸을 수 있고, 가장 앞장서서 가야하고,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지 않을 수 있고 하는 것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때, 광영이에게 어떤 말들을 해주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방식이 다르다는 것, 그래서 비교만으로는 좋음을 말할 수 없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영이가 열심히 걷고 달린 걸음들은 모두 잘하고 수고한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 해주려 노력했던 것 같다.

올림픽 공원으로 이동하고, 처음 만났던 성신여대입구역으로 돌아오는 모든 지하철 안에서 광영이와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한창 ‘연애, 이성(→이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지 않았는데, 음 일단 광영이는 여성의 또래 아이에게 관심이 있어보인다.)’에 관심이 많을 시기인 것 같았다. 또래 친구의 연애가 부럽다는 말이라든가, 자신에게 애인이 생기면 어디에 같이 가보고 싶다는 둥의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면 나도 마음이 말랑말랑 해졌다. 나한테 내 연애사를 묻기도 했는데 이따금 보이는 그의 ‘예리한(척 하는) 눈초리’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기도 했다.

아이와 더 많은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광영이가 던지는 ‘재미없는 개그’는 두 부류다.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ㅠ), 아니면 광영이 특유의 개그 코드인 경우이다. 전자의 경우에 대해서 나는 ‘그거 재미없어. 그렇게 하면 하나도 안웃긴데, 왜 그런말을 해? 내가 그런 말 들으면 너무 상처받을 것 같아. 우리 재미있는 말만 하자’라고 조금 솔직(?)하게 표현하고 만다. 그러면 광영이는 괜찮은 척, 하지만 무안한 듯한 표정을 쌜쭉하게 짓는다. 그럼 또 나는 괜히 미안해서 손 잡은 팔을 흔들면서 화제를 돌린다. 후자의 경우는… 큰 일이다. 벌써 광영이의 재미없는 듯 귀여운 허무개그에 내가 물들고 있다. 남들이 하면 재미 없어도 광영이니까 용서되는 그 개그는, 아마 광영이가 할 때만 재미있을 것이다.ㅎㅎ

 공원은 넓고, 스텝 역할이 분배되는 것에 조금 미숙함이 있었고, 아이들의 이동속도의 격차가 벌어지고, 늦참 하는 아이와의 동선도 꼬여 겸사겸사 베이스캠프의 위치가 공원 전반부의 호수 앞이 되었다. 이미 시간이 많이 딜레이 되어가고 있었고 급조된 비행기 날리기를 나름 성황리에 마무리 하려던 찰나, 불어오는 강풍에 분수의 물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얼굴에 대고 분무기를 뿌리는 수준이라면 믿으실까요? 가랑비에 옷이 젖듯 날아오는 물에 머리가 젖어갔다면 믿으실까요..? 하하. 하지만 그 덕인지, 쨍한 햇빛과 불어오는 바람과의 조화가 맞춤이었던지, 밋밋해질 것이 우려되었던 우리들의 나들이에 무지개가 폈다. 선명하게. 짧지 않은(?) 인생에서 나름 손에 꼽히는 진한 무지개였다.

  무지개가 뜬 그 순간에 참 ‘행복’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그다지 내 것 같지 않는 삶 안에서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우듯 별 것 아닌 일에도 해탈한 표정을 지으며 ‘행복하다’는 말을 내뱉곤 했다. 진심이기 보단, 내가 나에게 던지는 위로 같은 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핀 무지개를 봤을 때 참 행복했다. 나들이가 무지개로 장식되어서? ㅎ라기 보단, 괜히 광영이와, 그리고 도토리 아이들과 쌤들과 앞으로 만들어나갈 도토리의 남은 시간이 오늘처럼 찬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러 색이 스펙트럼으로 어우러진 그 무지개처럼, 어느 날에 무지개 빛깔로 옷을 맞춰 입은 우리가 보았던 무지개를 닮은 모습으로, 푸른 빛깔의 옷을 맞춰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은 즐거움으로 가득 찰 것이다. 조금 삐걱대더라도, 모두의 힘으로 맞춰나가면서. 새로운 것을 도전함에 주저하지 않고 서로를 다독이면서. 기다리면서. 다름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나가면서.

/ 함수민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