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 윤소영 /  평화캠프 울산지부 도배자원활동 자원활동가

 

가장 ‘나’다울 수 있는 활동, 도배 자원 활동

나는 학점과 스펙의 굴레에서 살아가는 이 시대의 흔한 대학생 중 한 명이다.

자원 활동을 신청하게 된 이유는 봉사 학점을 채우기 위해 하는 일회성 봉사활동 또는 방학 때의 단기 봉사가 아닌, 내 의지에 의해 시작한 정기적 활동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무조건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활동’을 하고 싶었고, 이 활동을 학업 스트레스의 돌파구로 삼고 싶었다. 게다가 내년, 내후년이 되면 정말 하고 싶어도 너무 바빠서 못 하게 될지도 몰라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도배 자원 활동을 신청한 이유는 이때까지 해보지 않았던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서가 정리를 한다거나, 공공기관에서 사무보조와 청소를 한다거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습지도 및 상담을 하는 등의 활동은 많이 해왔던 흔히 접할 수 있는 활동이었다. 그러나 도배 자원 활동은 자원 활동으로써 처음 들어보는 활동이었고 매우 특별하게 다가와서 그 의미가 깊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우리가 도배하는 장소는 주민의 대다수가 독거노인이며, 낡고 오래된 집이 다수를 이루는 지역이다. 이번 활동 때 방문한 집도 독거노인분의 집이었는데, 이러한 공간에서는 건강하게 생활하시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배를 열심히 해서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으로 활동에 임했다. 리더님의 역할분담 인솔 하에 시작된 도배는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지칠 줄 몰랐다. 갈라진 벽과 내려앉을 것만 같은 천장에 막막해했던 걱정이 무색해질 만큼 체계적인 진행을 통해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의 참여를 통해 마침내 도배를 모두 끝내고 물품이동 및 정리까지 마쳤다. 도배를 마치고 난 후의 집을 봤을 때, 우리가 해냈다는 생각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활동 전과 후가 확실한 도배활동의 묘미를 느낀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도배를 잘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에 낯설었지만 첫 번째 활동을 통해 이미 호기심 반(半), 의심 반(半)에서 완벽한 자유의지로의 전환이 이루어졌고, 이번 달 활동을 통해 도배 자원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한 번의 도배로 집을 완벽하게 바꿀 수는 없지만, 집 주인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더 잘하고 싶어진다. 이렇게 도배 자원 활동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한다.

도배 자원 활동을 마치고 늘 느끼는 점이 있다면, 다 같이 함께 한다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배 자원 활동은 협동의 중요성을 몸소 체험하고 배우는 참교육의 현장이라는 의미가 있다. 내가 원해서 했기에 ‘진심’의 자원 활동을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어 더욱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 도배 자원 활동은 하면 할수록 나도 행복해지고 내가 가장 ‘나’일 수 있는 활동이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활동을 하며, 좋은 시간을 보내는 이 활동이 즐겁다. 앞으로의 도배 자원 활동이 더욱 기다려지는 도배 자원 활동이다.


 

[우수상]

#1. 수기 부문

– 김재근 / 평화캠프 서울지부 비누방울 자원활동가

평화캠프는 세상을 열어준 문입니다.

“250만” 어느 영화의 관객동원 숫자가 아닙니다. 현재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의 숫자입니다. 실제로는 그 이상이 될 거라 추산됩니다. 저는 그동안 이 숫자를 알지 못했습니다. 어느 신문기사, 어느 책의 한 줄에 적혀있을 저 숫자를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건 제가 250만 명의 나머지에 속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250만 명의 세상과 그 나머지의 세상은 분명 공존하지만 섞이어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숫자는 함께 살고 있지만 분명 함께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 분명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뜻하는 숫자로도 읽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저에게 있어서 닫혀있던 세상의 문을 열어준 것이 바로 평화캠프인 것입니다. 평화캠프의 자원활동은 여태 보지 못했왔던 세상을 열어주었습니다.

100명 중 5명은 장애인인 것이 우리사회이지만 저에게 있어서 처음으로 의미있는 만남을 가진 장애인은 제가 비로소 24살이 되어서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은 마을에서도, 학교에서도 만나보지도 못하고 대화를 나누지도 못했던 그런 사람을 처음으로 만나 인사도 나누고 대화거리가 떨어져서 어색하여 보기도 한 것이 저의 첫 자원활동이었던 것입니다. 자원활동 첫날, 활동참여자의 집으로 가며 느꼈던 기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무언가에 첫 발을 내딛을 때의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면서 ‘장애’라는 관념은 머리속을 종횡하고 ‘장애인’의 이미지가 연상되면서도 ‘그것은 선입견이야!’ 스스로를 나무라며 그 언덕길을 올랐습니다. 그리고 문 앞에 다달아 비로소 문을 열었는데 그렇게 마주한 세상은 머리속 생각들과 어느 한구석도 닮아있지 않은 것이었고 심지어는 너무나 익숙한 기분이 들어 금새 적응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곳은 그냥 사람이 사는 집이었고 휠체어를 타고 있단 것이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반가운 목소리로 맞이하며 나오는 사람의 친숙한 느낌에 오히려 저는 어리둥절하였습니다. ‘어라?’

궁금한 것이 한 두개가 아니었습니다. ‘어디가 아파서?’, ‘사고일까?’, ‘이건 할 수 있을까?’ 처음보는 익숙하지 않은 몸짓에 계속 관심이 갔습니다. 전 궁금하면 대뜸 물어보는 성격이지만 왠지 말이 자꾸 목구멍에 막혀서 처음엔 잘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말이 목구멍에 막히고 몇 차례의 활동이 지나고 나서야 목구멍에 있던 말들을 하나 둘 꺼내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얘기를 조금씩 들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장애를 가지고 계신지, 자립생활을 하기 전에는 어디서 어떻게 생활하셨는지, 취미와 사회생활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시는지, 무엇이 불편하시고 무엇이 필요하신지 등… 대답해주시는 말들은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에 참 재밌고 신기했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알아가며 이 사람들의 세상을 조금씩 엿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활동을 이어가며 그 세상은 더 피부에 와닿는 것이 되어갔습니다. 목욕보조활동을 하면서부터 일반욕실이 누군가에게는 되게 불편할 수 있단 걸 알게된 것이 그런 것입니다. 몸이 불편하신 분에겐 더 넓은 욕실공간과 안전장비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또한 함께 외출을 해보고 나서야 잘되어 있을거라 생각했던 지하철 승강기들의 위치들이 참 불편하단 걸 알게되었고 장애인용 화장실 시설이 너무 미비하단 것도 알게되었고 건물 입구들마다 자리잡은 경사로 대신의 높은 턱들도 눈에 보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하루 7교시의 수업을 하면서도 장애에 대해서는 딱히 기억에 남는 내용이 없습니다. 장애란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싶습니다. 저에게 장애란 매우 막연하고 추상적인 단어에 지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느 학교에든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급을 설치할 수 있단 걸 지금은 알지만 당시에는 ‘왜 우리학교에는 특수학급이 없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다리를 삐어서 학교 계단을 오르내리며 ‘계단 무지하게 불편하네’ 정도는 생각해본 적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런 불편함을 장애와 연결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철저히 비장애인의 세상에서 살아가며 전 장애인의 존재를 거의 인지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런 삶은 언제까지고 지속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우리 사회는 그 정도로 고약하게 세상을 구분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했던 저는 평화캠프를 시작으로 많은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 이외의 다른 세상 속에서의 다른 삶들이 저와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소수자라고 말하는 바로 그 사람들의 삶입니다. 그들의 삶은 보이지 않았고 직접 찾아가서 만나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그 세상과 저의 세상에 다리를 놓고자 합니다. 함께 사는 세상인데 함께 살지 않는 것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들과 만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의 문을 평화캠프가 열어주었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앞으로의 길에서도 평화캠프와 함께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평화캠프와 함께 더 많은 세상과 연대하고 싶습니다.


[우수상]

#2. 시 부문

– 문지영 평화캠프 목포지부’콩세알인연맺기학교’, ‘문화사업단 기.타.간’ 자원활동가

* 2014년 배낭 하나 메고 혼자 떠난 여행, 900km를 걸으며 만났던 많은 사람들, 걷기 27일째 되던 4월 30일에 나는 스페인 어느 작은 시골 마을 ‘Fonfria’에 있었다. 그 날 그 곳에서 만났던 평화캠프의 인연! 대전지부를 알고 계시던 목사님, 대구지부 고구마 인연맺기학교에서 활동했던 친구. 셋이서 나누었던 이야기들. 그 때의 일기장을 다시 펼쳐보며…

안 개 속
(부제 : 4월30일 그 길 )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알 수 없는 이 길 을
가벼운 걸음으로 지나간다

앞길에 무엇이 놓여 져 있는지
알 수 없어 두려운 이 길을
함께 걷는 사람 있어서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이 길이
훨씬 멋스럽다.

뚜렷하게 보여 지는 길 위에서
내가 보고픈 것에만 머물 던
나의 시선이
나의 생각이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그 곳에서 만난 친구를 통해
희망을 본다

—–

왜?

길이 아닌 곳을 넘어 가던
뒷모습에 자꾸 웃음이 난다.

왜?
아무 표시도 없는 그 길을
가고 있었는지

왜?
우리는 그 길에 확신을 가졌는지

왜?
헤매 이고 있으면서 우리는
그렇게 즐거웠는지
우리는 그렇게 신났는지

알 수 없다 그때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웃음가득 얻었다
그들과 함께여서


[우수상]

#3. 사진 부문

– 김희윤 평화캠프 서울지부 회원

내 인생 평화캠프와의 첫 만남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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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활동가를 모집하기 위해 수많은 청테(청테이프)를 뜯으며
학기 초에, 여름방학 시작 무렵에 서울의 온갖 대학 캠퍼스를 돌아다녔다.
내가 평화캠프를 만나서 좋았던 경험들, 느꼈던 감동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화자보를, 포스터를 도배하고 다니던 그 때의 체력과 열정.
나 역시 누군가의 열정으로 평화캠프를 만났고,
또 다른 누군가들의 포스터 붙이기 신공?으로
또 다른 누군가들이 인생에서 평화캠프를 만날 것이다.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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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하늘달리기 (서부권역 전체소풍) / 2012년 하늘달리기 (서울지부 바자회)

평화캠프를 하면서 나도 성장하고 나와 만났던 아이들도 성장했다.
그 성장이 느리더라도 손톱만큼 자라더라도 자라고 있다는 것을 보았고
또 손톱만큼 세상도 바뀌고 있다고 생각을 하며 평화캠프의 자원활동을 했었다.
손톱만큼 자라지만 항상 내가 더 많이 배웠고
나보다 항상 덩치?가 컸던 아이들이 생각나고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며 살아가고 있을지
아이들의 내일은 어떨지 항상 생각났던 것 같다.
첫 번째 사진 속 2009년 활동참여자와 대학생자원활동가는
3년 후, 2012년 자원활동가와 코디네이터로 서로 성장해서 만났다.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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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평화캠프는 함께 한 처음이 참 많다.
비누방울은 내 인생의 첫 번째 자원활동이었다.
이 사진은 비누방울에서 갔던 ‘첫 번째’ 나들이 사진이다.
비누방울은 내 인생에서 ‘처음’ 장애인 언니오빠들을 만나게 해주었고
나에게 ‘당신은 장애를 얼마나 아는가?’라고 수없이 물었다.
비누방울에서 할머니를 만나 노인의 삶에 대한 ‘처음’으로 고민하게 되었고
장애인이 살아가는 삶이 어떠한지 ‘처음’으로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날 나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되었고,
오지 않는 장애인콜택시를 몇 시간동안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이날 나는 그래서 막차를 타고 간신히 집에 갔다.)
2010년 11월에서 5년이 지난 지금도 세상은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지만
비누방울에서 만났던 수많은 인연들은 곳곳에서
자신이 만난 ‘첫’번째 고민들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