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6 도토리인연맺기학교]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지난 주말의 광주기행으로 유빈이와는 2주 만에 만났습니다. 어느 덧 약 두 달의 기간 동안, 6밤을 자면 ‘당연한 듯’ 만나는 사이가 되어버려, 생각보다 더, 더 많이 반갑더랬습니다. 봄 학기 도토리 인연맺기학교에서의 만남은 앞으로 두 번밖에 남지 않아 저도 모르게 조금은 ‘조급’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더 친해지고 싶어서, 더 많은 기억을 쌓고 싶어서, 유빈이의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더 많은 말들을 유빈이의 거부반응 없이 유빈이에게 전달해주고 싶어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훨씬 더 너를 많이많이 생각한다고 표현해주고 싶어서, 어느새 인가 저도 모르게 유빈이 역시 그래주길 ‘바라버렸던 것’ 같습니다.

유빈이의 컨디션은 나빠 보이지 않았습니다. 율동시간에 유빈이는 율동에 직접적인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어도, 빙글빙글 돌아가는 의자에 앉아 제가 의자를 돌려주면 ‘놀이기구를 탄 기분’을 즐기는 것 같았지요. 평소 부딪히기만 하면 아웅다웅하던 정우가, 그리고 그다지 큰 교류가 없던 무연이가 다가와 의자를 돌려주겠다고 했을 때, 유빈이는 기꺼이 그들이 자신이 앉아있는 의자를 돌려주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니’나 ‘싫어’ 등 부정적인 단어를 내뱉지 않았습니다. 유빈이는 즐거워보였고, 저는 그런 유빈이를 볼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저는 유빈이와의 관계에서 조금의 ‘자만’을 했던 것 같습니다. 유빈이와 보내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저는 유빈이와 소통하는 법을 조금씩 익혔습니다. 제가 평소에 누군가와 소통할 때의 ‘호흡이 긴’ 화법은 유빈이에게 맞지 않았습니다. 조사가 빠진 단답식 문장을 유빈이는 더 잘 이해하고, 이에 반응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많은 말’들을 유빈이에게 해주며 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좋은 대화’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유빈이처럼 딸기 아이스크림을 좋아해. 우리 언젠가 같이 아이스크림을 사먹자”라는 말은 유빈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쓸데없이 번거롭고 장황한 화법이었습니다. ‘딸기 좋아해. 아이스크림 좋아해. 너는? 유빈이가 좋아.’라는 말이면 충분했습니다. 유빈이가 제 말을 받아들이고, 제 감정을 수용해주기에 이 정도의 말이면 충분했습니다.

유빈이가 좋아하는 몇몇 것들을 환기시키며 대화를 이끌어가는 것도 유빈이가 거부반응 없이 제 말을 받아들여주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유빈이가 좋아하는 ‘안젤라’(흰 고양이가 나오는 만화의 주인공 고양이의 이름으로, 가끔 유빈이는 이 고양이 흉내를 내곤 합니다.), ‘금발머리’, ‘포니테일’, ‘딸기’, ‘나무에 올라가기’ 등의 말들은 유빈이의 시선을 끄는 말들인데, 이 말을 꺼내며 제 감정을 섞어 전달하면 유빈이는 곧 잘 제 말을 이해해주었습니다. 제 말에 귀를 기울여주게 하는 표지가 되어주었습니다.

이러한 나름의 방식을 통해 유빈이와 조금씩의 소통이 가능해졌고, 저도 모르게 ‘유빈이와의 관계’ 그 자체에 대한 집중에서 벗어나 ‘나도 이제 조금씩 유빈이와 소통이 가능해진다. 우리에게는 앞으로 즐거운 만남만 남아있을 것이다’는 ‘자만’을 했던 것 같습니다.

미술 프로그램이 많은 날이었습니다. 휴지와 행주를 이용하여 맑음이 인형을 만들기도 했고, 물풀과 리뉴, 그리고 붕사를 이용하여 슬라임 만들기에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유빈이는 미술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았지만, 때로 그 ‘관심’의 표현은 더 많은 미술 용품들에 대한 ‘욕심’과 ‘고집’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유빈이는 저와 ‘함께’ 미술활동을 하는 것을 꺼렸습니다. 자신만의 ‘미술 공간’이 확보되어야 하고, 그 공간에 다른 사람의 침범을 용납하려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에 의한 것이 아닌 그림이나 작품에 대해서는, 그것을 ‘침범’이라고 느끼는 한, 자신의 손으로 망가뜨리거나 부숴야 ‘나름의 안정’을 찾는 친구였습니다.

정확한 이유와 시점은 잘 모르겠으나, 맑음이 인형을 만들던 중 어느 새 유빈이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그것은 주변 친구들의 매직펜을 빼앗거나 친구나 선생님에게 용품을 던지거나 하는 방식으로 발현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황토색 매직펜으로 제 청바지에 화풀이를 하였고, 이를 지켜보던, 저를 비롯한 주변의 쌤들은 유빈이의 행동에 대한 지적을 시도했습니다. 유빈이의 ‘화’는 더 커졌고 큰 소리로 울며 발버둥치기 시작했습니다.

유빈이와 두 번째로 만나던 날 비슷한 일이 있었던 터라, 저는 조금 무서웠습니다. 우리의 만남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는데, 유빈이가 나에 대한 ‘상처뿐인’ 기억으로 이번 도토리 학교를 기억하면 어떡하지, 이 일로 유빈이가 마음의 상처를 입으면 어떡하지, 나에게 ‘배신감’을 느끼면 어떡하지, 나를 ‘의지할 수 없는, 결국 세상의 ’못 된‘ 사람들과 똑같은, 쉽게 자신을 나무라고 마는’ 사람정도로 생각해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이기적인 걱정들 탓에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없을 줄 알았는데, 나는 유빈이를 조금은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자만’을 했던 스스로가 너무 부끄럽고 속상해서 무서웠던 것 같기도 했습니다.

유빈이는 집에 가려 한다거나 떼를 쓰거나 했고 그 때마다 저는 유빈이를 ‘결박’하려 했습니다. 도망치지 못하게, 손으로 주변의 쌤들을 때리지 못하게, 발로 남을 차지 못하게 유빈이의 손과 발을 ‘고정하려고만’ 했습니다. 문득. 결국 난, 유빈이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은 채 결박만을 하려한 난, 유빈이가 나로부터 도망치지는 않을 것이라 믿지도 못한 채 유빈이의 목소리를 지우려고만 했던 난, ‘이 못 된 세상이, 유빈이가 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고 늘 유빈이를 다그치기만 할 이 사회’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 손 놓을게. 니 손 놓을게. 유빈이도 도망치지 마.‘라며 유빈이의 팔을 놓았고, 거짓말처럼 유빈이는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유빈이는 많이 억울해보였습니다. 사실 제 바지에 매직을 그었을 때, 아주 찰나지만, 유빈이의 얼굴에 자신이 저지른 행동으로 놀라고 당황한 기색이 스치듯 비쳤던 것 같습니다. 그 생각이 나면서, 유빈이와의 관계에 대해 저 혼자 ’자만‘했던 마음들이 괜히 유빈이에 대한 제 ’기대‘와 ’욕심‘을 키워, 그것이 오히려 유빈이를 상처입힌 것 같아 유빈이에게 마냥 미안하더라구요. 저도 모르게 유빈이 앞에서 눈물을 내비쳤습니다.

제 눈물을 보고 유빈이는 당황해 했습니다. 그러더니 제 어깨에 두 손을 얹고 울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제게 또박또박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유빈이는 저한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해주었습니다. 나를 믿으니, 자신에게서 멀어지지 말라는 듯, 자신을 믿어달라는 듯, “선생님 미안해. 나는 짜증이 났어. 그런데 자꾸 주변에서 그러니까 더 짜증이 났어. 미안해.”라고 한 번에, 제가 자신의 말을 끊기라도 할까 걱정하면서, 제가 또 다시 자신의 손을 잡을까 걱정하면서, 제가 자신을 믿지 못할까 걱정하면서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유빈이에게 고맙다고, 니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해주어서 고맙다고, 나도 정말 많이 미안하다고, 앞으로 널 믿고 다시는 니 손을 붙잡아놓지 않겠다고 이야기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정말 많이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세상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빨라서 유빈이와 같은 친구들을 기다려주지 않곤 합니다. 유빈이는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유빈이의 표현을 읽어내려는 노력이 없으면 자칫 유빈이의 감정들은 ‘오해’받기 쉽기도 합니다. 제가 도토리 인연맺기 활동을 시작하면서 유빈이를 만나고, 유빈이와 관계를 맺고, 대화하는 법을 익혀나가면서, 저는 유빈이를 충분히 기다려주고 유빈이가 세상의 속도에 맞춰 걷지 않은 채 유빈이의 모습 그대로로 머물러도 사랑받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결국 자신의 정제되지 못한 감정들을 이야기하고 표출하려는 유빈이에 대해 제가 보였던 유일한 태도는 ‘결박’이었습니다. 그것이 너무나 미안하고 스스로에게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더 많이 믿어주기로 다짐했습니다. 유빈이의 감정도, 유빈이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받았을 때 안정을 받는 다는 것을 믿고 기다려주기로 다짐했습니다. 더불어 유빈이의 얼굴에 비춰지는 찰나의 표정들, 행동에서 드러나는 감정들을 좀더 섬세히 읽어내도록 노력하는 남은 2주가 되도록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너를 정말 많이 생각하고, 너와의 헤어짐이 정말 많이 아쉬울 것이고, 니가 정말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너는 니 모습 그대로 사랑받아야 마땅하고, 설령 지금 니가 보이는 조금의 고집스런 모습도 그저 그 나이 또래의 당연한 모습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남은 시간동안 너랑 정말 많은 추억을 쌓고 싶다고, 천천히나마, 욕심부리지 않고, 전달해주려 노력하기로 다짐했습니다.

 

/ 함수민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