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4. 서울 인연맺기학교
행복한 순간 그리고 속상한 시간
아침부터 날이 흐렸다. 비가 내리고 하늘은 컴컴했다.
집 앞에서 우산을 펼치면서 내 짝꿍어린이인 필홍이가 생각났다.
전날에 걸려온 필홍이의 전화가 생각나서였다.
필홍이는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토요일의 날씨를 걱정하며 야외활동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마치 스탭 선생님인양 굴었다.
우리가 영 못미더웠나?
전화받고 필홍이 네가 너무너무 귀여워 길거리에서 쓰러질 뻔 했다는걸 넌 알까..
그런 필홍이가 생각나 토요일의 비는 달갑게 느껴졌다.
새로 오신 샘들, 참 오랜만에 보는 예쁜 세원이와 리나와 까불이 진이, 우리 필홍이.
마냥 좋았던 활동시간이었다. 준비한 프로그램을 아이들이 너무 잘 따라와 줘서 참 고맙기도 뿌듯하기도 한 그런 시간.
매주 이렇게만 따라와 준다면 바랄게 없다고 계속 생각했다.
우리 필홍이는 초등학교 6학년. 요즈음 사춘기 소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활동보다는 만화책이 더 좋고, 율동은 개나 줘버리고, 이건 비밀인데 사실 내 말도 종종 콧구멍으로 듣는다. 그런 필홍이가 아주 열심히 활동에 참여했다.
그림을 얼마나 잘 그리던지. 나중에 화가를 시켜야되나 고민했다.
그런데. 클레이는 더 잘 만들었다. 세상에 우리 필홍이 예술적 감각이 아주 뛰어나다.
필홍이의 장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물레를 차고 그릇을 빚는 필홍이. 크 너무 멋있다. 필홍이가 그릇을 만들면 내가 그 그릇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이래 봬도 저 나름 회화과..^^)
이렇게 행복한 시간이 끝났다.
아닐 수도 있지만, 우리들이 각자 유독 신경 쓰이는 아이가 한명쯤은 있는 것 같다.
보통 스스로의 짝꿍들이 그렇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내가 그렇다.
모든 아이들이 다 예쁘고 마음 가지만 유독 마음 가는 한명이 있다.
내 짝꿍이 누구던 내 짝꿍이 어디가 많이 불편하던 불편하지 않던 가장 마음 가는 아이가 따로 있다.
마음이 가는 이 아이는 폭력적이다. 화를 주체하지 못한다.
화가 나면 샘들에게도 무차별 적으로 욕을 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힘이 세 어지간한 여자 선생님들은 이 아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서운 남자 선생님만이 감당할 수 있다.
프로그램 참여는 전혀 하지 않고 다른 아이들에게 시비를 걸고 욕을 하고 위협을 가한다.
머리도 좋아서 우리가 들으면 기분 나쁠 것을 예상하고 참 나쁜 말들을 뱉는다. 사람의 콤플렉스를 콕콕 집어서 그 사람을 공격하는데 쓴다. 여자와 남자를 가린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적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뱉어낸다. 그런 말들을 듣고 우리 샘들은 너무 놀라 순간 말문이 턱 하고 막힌다.
이렇게 써 놓으니 내가 이 아이를 무지막지하게 싫어하는 것 같지만, 정반대다.
나는 이 아이가 참 좋고 참 예쁘고 참 마음이 쓰인다. 이 아이의 순간이었던 예쁜 모습들을 보았고, 그 모습들은 내가 이 아이를 좋아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어쩌면 이 친구를 나 혼자 짝사랑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 아이의 폭력적이고 무차별적인 모습이 더 마음 아프고 더 속상하다.
참 예쁜 아이인데. 왜 우리 예쁜 아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까.
그런 아이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고 했다. 사실 오랫동안 생각했었다. 이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는 것을. 그것을 우리가 제지 밖에 못 한다는 것을. 미안한 마음에 울어버렸고 사실 이걸 쓰는 지금도 코끝이 찡하다.
세상에서 제일 속상한 활동 마무리였다.
/ 자원활동가 박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