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9 완두콩 인연맺기학교] 이토록 평범한

완두콩을 시작하고나서 엄마에게 나 키울때 어땠는지 물어본 적이있다. 사실 참 애정하는 친구들이긴 하지만 완두콩 아이들은 정말 지지리도 말을 안 듣는다. 순간의 욕망을 위해 가열차게 살아가는 친구들이 많다. 가령 전투기를 종이접기로 접어달라는 말을 그림 그리기 시간에 하는 친구가 있다면 짝꿍 선생님은 색종이를 구해서 전투기 접는법을 검색한 후 그 어려운 미션을 수행해야한다. 테마가 있는 그리기 프로그램이라도 한반도를 그리고 싶어하거나 모든 물감을 섞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친구가있다. 친구가 화장실을 들어가면 꼭 따라 들어가야하는 친구도 있다. 클레이를 가지고 놀라고하면 물을 잔뜩 먹여서 액체괴물 같은 질감을 만든후에 자신의 성공에 흥분하여 막 교실을 돌아 다니며 가지고 놀다가 불현듯 그 질감이 참을 수 없이 싫어져서 옷에 손을 닦아 옷을 망치는 친구도있다. 가지 말라는 곳은 꼭 가야 하고 하지말라는 것은 꼭 해야 하며 정작 하라고 하면 절대 하지않는다.

프로그램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면서도 매우 진지했다. 자신의 단단하고 아름다운 세계가 침범당하는 것을 감히 허용하지 않았다. 거리낌 없이 진노를 퍼부을 줄 아는 친구들이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참으로 힘들었다. 프로그램 진행이 안되는 것이 내 탓인 것 같아 괴로웠고 프로그램에 동참시키기 위해 하는 수많은 노력들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몰라서 나 자신이 싫어졌다. 누군가 신은 0과 같이 그저 세상의 공백을 증명하는 기호로써만 기능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 작은 신들은 끊임없이 나를 시험에 들게했고 내 행동을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통제했다. 매주 새롭고 특별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땠을까. 완두콩을 2학기째 진행하던 순간에 들었던 궁금증이었다.

엄마의 대답은 흥미로웠다. 누나는 얄미울만큼 영특했다고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위해 나를 사용해먹는 아이였다. 반면 나는 답답할 정도로 우둔해서 맨날 이용당해 먹기만 하고 이용당한줄도 모르고 진지했다고 한다. 그런만큼 알 수 없는 아이였다고도 했다. 누나는 눈치가 빨랐던 탓에 과감히 욕망을 포기할 줄 알았다고 했다. 필요한 사람을 찾아가고 상대와 협상할 줄 알았지만 나는 오로지 자기만의 길을 걸었다고 했다. 높은 곳을 좋아하는 탓에 길을 걸어도 담벼락을 기어오르거나 꽂히는 것이 있으면 주변 신경도 안 쓰고 앞만보고 달리는 녀석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자주 간을 졸여야했고 그래서였을까 누나에겐 없었던 통금이 나에겐 있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있자니 아이들이 생각났다. 나는 그들이었다. 나는 엄마였고 그들은 누나였다. 아마도 엄마 역시 어릴적엔 우리였을 것이다. 비범과 특출 사이 어디선가 줄타기를 즐기고 있는줄 았알지만 평범한 일상이 적힌 일기를 펼치고 있었을 뿐이다.

윤식이가 영상을 보지 않는 탓에 지루해했다. 물을 틀고 싶다고 징징거리는 윤식이가 프로그램에 방해가 될까하여 사무실을 나와 거리를 거닐었다. 벌써 2시간째 들어오지 않고 버스정류장에 앉아있다는 혜승이를 찾아갔다. 저번 주 혜승이가 자꾸 짝꿍선생님의 신체를 더듬으려고 하길래 말을 걸어서 주의를 분산시키면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이번 주는 버스를 타고 훌쩍 떠나버리고 싶어하는 혜승이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계셨다. 효과가 있다며 좋아하셨지만 힘드실 것 같아 윤식이와 함께 혜승이를 보러간 것이다. 가는 길에 많은 사람을 만났다. 꼭 직각으로만 걸어야 하는 분이 계셨다. 차를 타기위해 무수히 앞뒤로 왔다 갔다하며 직각걸음을 유지했다. 저기 혜승이가 보였다. 윤식이가 ‘혜승이다!’ 라고 외쳤고 혜승이에게 다가갔다. 혜승이는 자신의 짝꿍선생님을 독점하기 위해 나보고 가라고 했다. 걸어가는데 15분이 걸렸건만 혜승이의 강력한 의지로 1분도 도움을 못 드리고 다시 돌아와야 했다. 사무실에 돌아와보니 비눗방울 총을 든 도연이의 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도우는 총을 든 장남감을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쏘고 있었고, 도라0몽 인형을 집어던지는 찬서가 눈에 들어왔다. 사탕먹는 동현이. 선생님이 직접 만들어오신 빵을 먹는 윤식이까지. 그 애들을 쫓아다니는 선생님들이 보였다.

일상에 치여 프로그램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오늘은 특별하기를 바랬다. 어쩌면 언제나 특별하기를 바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완두콩에 대한 고민이 있을때마다 그들의 특별함을,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특별하길 원했고 그것으로 자기위로 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 특별하지 않아도 좋다. 당연했던 것이 다시금 당연해졌다. 이토록 평범한 하루가 끝을 맺었다. 그토록 단순했던 한학기도 결말을 향했다. 다시 이어져 돌아올 다음의 순간들을 기다리며 나도 이 일기장을 덮어 두기로 했다. 다음 학기에도 다시 뵈면 좋겠다. 한학기 정말 많은 수고들 하셨다.

/ 강신덕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