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2 완두콩인연맺기학교] 마녀 대마왕과 함께!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었다. 이번 주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공간에 도착하니, 이미 스탭선생님들이 책상과 의자를 전부 밀고 바닥에 비닐을 깔아 놓으신 게 보였다. 인연맺기학교는 활동참여자 아이들과 1대 1로 짝을 이뤄 활동하는 짝꿍선생님과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스탭선생님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맨 처음 인연맺기학교에 들어왔을 때부터 굉장히 효율적이고 좋은 역할 분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얼마나 좋은 시스템인지 더 실감이 난다. 나같이 짝꿈으로 활동하는 경우, 스탭선생님들이 항상 옆에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바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안정감이 있고, 무엇보다 프로그램 내내 오롯이 활동참여자와 노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
 저 멀리 내 짝꿍 활동참여자인 도연이가 앉아있는 게 보였다. 도연이는 눈이 똘망똘망하고 코가 오똑한 아이로 처음 봤을 때 헉 소리가 나도록 귀여웠다. 저번 주에 도연이가 팔을 다쳐 완두콩 학교에 오지 못했으니, 이번 주가 무려 이주일만에 보는 것이었다. 완두콩 학교에 또 못 갈까봐 한 주 동안 조심조심 다녔다던 도연이는 시작부터 기분이 무척 좋아보였다. 내게 기차가 어딜 가냐고도 물었다. 간만에 받는 질문이 반가웠다!!
 이번 주 프로그램은 비 인형과 비 인형이 쓰는 우산 만들기, 전분 놀이, 액체괴물 만들기, 이 세 프로그램이 준비되어있었다. 몇 주 활동을 해보니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뭔가 직접 주물럭주물럭 만지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이번 주는 모두 물렁물렁한 걸 만지는 프로그램이라 좋다고 생각했다.
 프로그램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프로그램에 조금이라도 참여를 유도하려는 선생님들과 마이웨이를 걷고 싶은 활동참여자 사이에 밀당이 이뤄진다. 도연이는 전분가루를 보자 비 인형보다도 전분을 먼저 만지고 싶어했다. 인형 만들고 가루 가지고 놀자, 친구들 하는 거 같이 해보자 등등 여러 가지 회유책을 써보았지만 결국 가루부터 트게 되었다. 사실 이 밀당에는 결과가 정해져있다…
 다른 프로그램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내용이 좀 다르다. 비 인형을 만드는 의도는 오늘 비가 왔기 때문에 금방 그치게 해달라고 만드는 것이었지만 도연이는 인형이 아닌 배게 같은 것을 만들었다. 무엇이냐고 물으니 솜이라고 했다(!). 전분 놀이 기획의 의도도, 물과 섞이면 고체도 액체도 아니게 되는 전분의 독특한 질감을 느껴보자는 거였지만 도연이는 자칭 ‘마녀대마왕’ 답게 그릇에 전분이랑 물을 넣고 저으면서 마법 스프를 만들었다. 액체괴물을 만들 때도 마법스프 2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는 비즈구슬을 모으고 다녔다. 몇 주 만나보니, 도연이는 도연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 이번 주에는 의도적으로 도연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해보았다. 전에도 대부분 도연이가 하고 싶은 대로 했지만 이번 주에 다른 점은 나부터 프로그램과 전혀 상관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권장하였다는 것? 느낌 뿐일지 모르지만 도연이가  스트레스를 훨씬 덜 받아하는 것 같았다. 앞으로 잘 조율해봐야겠다. 중요한 건, 도연이가 의도와 다르게 프로그램을 하더라도 즐겁기만 하다면 좋다는 것이다. 도연이가 프로그램을 잘 따라 하는 것보다 스스로 재밌어 하는 걸 보는 게 더 뿌듯하다. 그게 나를 비롯한 모든 선생님들이 바라는 것일 테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활동참여자들이 돌아가고 나면, 선생님들끼리 남아 피드백을 한다. 내가 생각했을 때 이 피드백의 좋은 점은 오늘 프로그램의 부족한 점, 안 좋았던 점을 말하는데 있다기 보다도 내가 오늘 어떨 때 힘들었음을 말하고 나누는 데 있는 것 같다. 인연맺기학교에게 중요한 것은 활동참여자뿐 아니라 자원활동가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조금 덜 힘들게 홛동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오기도 한다. 나 역시 도연이와 활동하면서 느꼈던 어려운 점들을 피드백 시간에 말하면서 어떤 방향성-진짜 꼭 필요한 터치가 아니면 하지 않는다 등의-을 잡을 수 있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도연이 어머님을 기다리며 줄을 가지고 놀았었는데, 도연이가 엄청 즐거워하던 것을 떠올리니 기분이 좋아진다. 아직 어려운 점이 많지만 잘 해보고 싶다.
 이번 주도 짝꿍선생님, 스탭선생님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 이연지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