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지부 돌고래인연맺기학교 10월 31일 2회차 수업 <할로윈 파티> 1조 활동후기
*박민희 쌤이 작성한 후기입니다.
“봉사 시간 50시간”
정현이를 만나게 된 이유 중에 하나였다. 1년 간 봉사 시간 50시간을 채워야 장학금이 주어진다. 그 액수는 300만원. 어찌 보면 졸업 직전 봉사학점과도 같은 흔하디흔한 것이다. 나는 자원 봉사자 모집 포스터를 보고 괜찮겠다 싶어 지원을 했었다.
10월 4일에 평화캠프 사무실에서 자원 활동가 교육을 받고 10월 17일에 인연맺기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다올 성인 장애인 학교에서 정현이를 처음 만났다. 그때는 나름 별 탈 없이 잘 지냈었는데…, 이동보조를 하러 정현이가 사는 아파트에 갔을 때 나를 반기는 정현이를 생각하며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놀이터에 앉아 있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정현이가 소리를 지르는 것을 들었다.
“아 나 안가!! 할로윈 파티 가야된다고오오!!! 문수초등학교 갈거라고오오!!”
이번에 우리들도 할로윈 파티를 기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현이의 어머니께서는 인연맺기 학교에서도 할로윈 파티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에 돌아오는 말은
“거짓말 하지마!! 아 선생님 가세요!!”
라는 냉랭한 외침뿐이었다. 빨리 가야한다는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며 우리도 할로윈 파티를 한다는 말도 해보았지만, 초등학교가 더 좋은 것 같았다. 2주에 한 번씩 만나는 나는 사실 정현이를 만나는 것이 기대되는 일이었지만 정현이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괜한 자책감에 시달렸다. 내가 못해준 것 같았다. 어쩌다 보니 어머니께서는 정현이를 초등학교에 태워다 주는 척 하면서 다울 장애인 학교로 태워주겠다고 하셨다. 학교 가는 방향이 아님을 깨달은 정현이가 소리를 지르다가 이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2주 전 인연맺기 학교에서의 활동이 재미가 없었나보다 싶어 괜히 속이 상했다. 학교에서는 할로윈파티를 하지 않는다는 담임선생님과, 같이 인연맺기를 하는 유지선 선생님의 파티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한참을 울던 정현이는 10분가량을 밖에서 들어가지 않겠다며 떼를 쓰다가 결국에 학교에 들어왔다.
도착해보니 방금 통화했던 지선쌤과 지윤이가 정현이를 반겼다. 언제 자기가 오기 싫어했냐는 듯이 다같이 노는 정현이를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1교시에 가면 만들기 수업을 진행했는데, 평소 아오오니(게임 캐릭터 중의 하나, 푸른 도깨비라고 함)를 좋아하는 정현이는 아오오니 가면을 만들었다. 그 가면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주 작은 구멍을 통해 앞을 보면서도 거의 하루 종일 쓰고 다녔던 것 같다.
점심시간에도 혼자서 밥을 잘 먹는 편이기에, 다른 선생님들보다도 내가 밥 먹을 시간이 많다고 여겨졌다. 그렇게 정현이는 밥을 먹고 자신이 만든 가면을 쓰고 숨바꼭질을 하며 다른 친구들과의 시간을 보냈다.
본격적으로 할로윈 파티에 앞서 우리 조원들 모두가 고민했던 사탕 나눠주기가 있었기에, 사전 준비를 위해 평화캠프 사무실에서 바구니 만들기, 보물찾기, 제비뽑기, 주사위 던지기 등의 프로그램을 구상했었다. 사정 상 불참했던 나로서는 다른 조원들이 만들고 준비한 물품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멋있어 보였는지 모른다.
그렇게 사탕바구니 만들기, 게임, 사탕목걸이 만들기에 대략 1시간 반 정도를 생각했었다. 그러나 정현이는 사탕바구니 꾸미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고, 이어진 제비뽑기, 보물찾기, 주사위 던지기 시간 또한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강당에서 보물찾기를 진행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정현이는 보물찾기를 해 본 모양인지 많은 양의 사탕을 찾아냈었다. 다른 아이들 또한 그랬다. 게다가 주사위 던지기마저 빨리 진행되어버렸기에, 예상보다 빨리 사탕 목걸이를 만들어야만 했다. 내가 도움을 많이 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정현이가 너무나도 잘 해 주는 바람에 옆에서 구경밖에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른 선생님들은 도와주느라 바빴는데 나는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내가 정현이의 짝꿍쌤으로서 무엇을 했는지 조차도 모르겠다며 스스로를 자책할 때에 정현이는 사탕으로 반지를 만들었다. 그러더니 돌연 내게 “선생님은 히로시 하세요“ 라며 내 손을 책상에다 가져갔다. 그렇게 내 손은 아오오니(도깨비)에게서 도망치고 물리치는 사람 역할을 하면서 정현이와의 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웬일로 정현이랑 제대로 놀아주는 것 같아서 가장 즐거웠다.
나에게는 남동생과 쌍둥이 여동생이 있는데, 쌍둥이인 누나들 밑의 막내인 남동생은 항상 놀 때마다 소외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정현이와 대화하는 법도 잘 몰랐고, 다른 선생님들이 정현이와 놀아주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었다. 그러던 중 무언가가 갑자기 쿵 하고 와 닿았다. 12살 정현이에게 21살인 나는 나이의 장벽을 허물어 가면서도 어떻게든 기억에 남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동생이 12살일 때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동생의 추억 속에 얼마나 남아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나는 동생에게 어떤 누나로 기억되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내내 나는 짜증 덩어리였고 밤 12시, 1시 귀가가 일상이었다. 동생은 그렇게 집에온 나에게 잘 자라며 매일같이 인사하며 잠에 들었었다. 친구들과 놀 시간은 있었지만 동생과는 대화가 안 된다며 말 한마디 안했었다. 타지 생활 중인 지금, 1년에 만나는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인데, 추석 때 놀이공원을 가고 싶어 했던 동생의 바람을 피곤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던 나는 매정한 누나일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자원 활동 중에는 정현이에게 나는 다정하고 잘 놀아주는 선생님이길 바라는 것이다.
오늘 아침, 나는 정현이와 같이 놀자며 손을 내밀었었다. 하지만 정현이는 또래 친구들과 익숙한 선생님들이 보고 싶어 나의 손을 뿌리쳤었다. 그 모습이 마치 동생에게 비친 나의 모습이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아팠다. 정녕 내가 정현이에게 선생님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것일까 다시 생각해본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자원 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현이와 함께 있는 동안 깨달음을 얻고 온 것 같았다. 사실 내가 자원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장학금이었다. 그러나 평화캠프에 들어온 후 정현이를 만나고 한 학기 장학금보다 더 값진 것을 선물 받고 있는 것 같다. 정현이를 만나지 못했었다면 12살의 내 동생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집으로 가는 길에 정현이가 좋아하던 가면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사실을 집에 거의 다 도착해서야 알게 된 정현이는 버스에서도, 정류장에도 앉아서 펑펑 울었다. 다시 만들자는 둥, 다다음주에 가지고 오겠다는 둥 댈 수 있는 핑계는 다 대어봤지만 정현이는 결국 어머니가 오실 때 까지도 울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괜히 내가 정현이 때문에 가지도 못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라고 하셨지만 내가 오히려 정현이를 울게 만든 것 같아 죄송스러웠다. 아이에게 중요한 건 사탕바구니가 아니라 아오오니 가면이었음을 간과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평화캠프 사무실에 도착해서 잃어버린 가면을 사진을 보고, 과정을 떠올리며 다시 만들었다. 똑같지는 않아도 내가 만든 가면을 받고 기뻐할 정현이의 얼굴이 마치 내가 자신과 놀아줄 때에 동생이 기뻐하던 표정과 같을 것이라 상상해보면서 말이다. 몸에는 피곤함이 가득했지만 마음속엔 기쁨이 더했다.